[아이 넷 키우기]자퇴 한다던 아이 '주위관심' 확인후 잠잠

  • 입력 2004년 1월 25일 17시 27분


설을 며칠 앞두고 오랜만에 온 식구가 지리산 자락에 있는 고향을 다녀왔다. 출발 전부터 아이들은 13년 된 승용차를 타고 가는데 대해 한마디씩 불만을 털어 놓았다. 큰 차를 빌리자, 정원 초과니 나는 버스로 가겠다 등등.

나도 슬쩍 남편에게 불안한 마음 한자락을 열어 보인다.

“이 차, 가다가 서면 어쩌지?”

그러나 큰 아이만은 불평이 없었다. 좀처럼 가족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려던 아이였는데 여행 내내 아빠 옆 좌석에 앉아 이것저것 아빠를 챙겨준다. 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그동안 입시가 얼마나 딸의 마음을 황폐하게 했었는지 새삼 느낀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학교에 잘 다니던 큰아이가 2학년 2학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했다.

학교나 친구간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그러는지 알아보았으나 전혀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학교에 다니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학교를 나와 검정고시로 대학을 가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지나가는 바람이겠거니 싶었으나 아이는 날이 갈수록 마음을 굳혀 갔다. 아침이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학교에 갔다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울면서 자퇴를 허락해 달라고 내게 매달렸다. 그리고 자기 직전까지 울었다. 집안은 온통 초상집 분위기였다.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황금 같은 시간들이 부질없이 스러져 가는 날이 계속되자 아이보다 내가 더 조바심이 났다. 이러다가 멀쩡한 아이 버리게 되겠다는 위기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위의 많은 분들과 아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상담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자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우세하여 차츰 나도 자퇴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그 당시 받고 있던 PET교육(바람직한 부모역할 교육) 영향도 있었다.

결국 아이에게 그럼 엄마는 네 편이 되어줄 테니 아빠 승낙을 받아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자퇴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나 그 뒷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다며 반대했다.

학교에서도 아이의 자퇴 의사를 알고 야단이 났다. 선생님들과 상담하고 오는 날은 내게 더 짜증을 부렸지만 아이의 마음에 미묘한 흔들림이 온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은 큰 애를 불러내 단둘이 데이트를 하는 자리에서 자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최종 선고를 했다. 아이는 당장 다음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으나 뒷날 아침 아빠의 학교 가라는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학교에 갔다.

그로써 자퇴 소동은 끝이 났지만 자그마치 3개월을 허송한 뒤였다.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자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건 나와 아이 주위의 많은 분들이 보여준 관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큰 애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분들이 아주 많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아직은 큰애가 그걸 부정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훗날 그 시절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기꺼이 손 내밀어주던 그분들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조옥남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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