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취업난에 시달리다 취업 전망이 좋은 전문대 직업전문학교 등에 입학하는 이른바 ‘학력 U턴’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
▽간판보다 실리=경북 A대를 졸업한 김모씨(31)는 간호전문대학을 택했다. ‘남자가 무슨 간호대냐’는 주변의 비아냥거림을 무릅쓰고 적성과 취업 전망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김씨는 “올해 간호학과 졸업생 3명이 모두 대학 졸업생”이라며 “다른 대학을 졸업하고 입학하는 후배들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직업학교의 40%는 대졸 학력”=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전문대 입학생의 숫자는 2001년 848명, 2002년 1402명, 2003년 1607명 등으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협의회 이승근(李承根) 부장은 “대졸 취업난이 가중되자 고학력자들의 입학이 급증했다”면서 “올해도 지난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전문대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건학과 사회복지학과 간호학과 등 취업률이 높은 학과로 대졸자들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 적십자간호대학의 2004학년도 대졸자 전형에는 260여명이 몰려 5.45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고졸자가 대부분 진학하던 직업전문학교의 대졸자 비율은 최고 40%까지 치솟고 있다.
▽취업 U턴까지=고학력 미취업자들은 중소기업, 제조업을 여전히 외면하면서 평생 직업을 찾기 전까지 ‘징검다리 취업’으로 ‘서비스업’에 몰려들고 있다. 이 때문에 고학력자들이 전문대, 고졸자들의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자리를 잠식하고 있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인문계 대학원을 졸업한 이모씨(29)는 요즘 일당 8만원을 받고 방송 프로그램의 ‘엑스트라’ 출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엑스트라 공급 업체인 ‘H예술’ 관계자는 “2, 3년 전만 해도 전문대 졸업 이하 학력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대졸자, 대학원 졸업자들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면서 “이들이 6개월에서 1년쯤 나오다 안 보이면 ‘취직했구나’ 하고 짐작한다”고 말했다.
명문 S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모씨(30)는 요즘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PC방에서 월 60만원을 받고 일을 한다. 이씨는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 최소한의 벌이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영유아들에게 영어를 들려주며 돌보는 ‘베이비시터’, 중급모텔이나 숙박업소의 시간제 관리인 등을 모집하는 인터넷사이트에도 고학력자들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영어권에서 유학한 고학력자들은 인터넷에 자신의 영어 발음이 담긴 파일을 올려놓고 베이비시터 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사회적 비용 엄청나=전문가들은 학력, 취업 U턴 현상을 두고 “경제 불황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대학의 학문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도 크다”고 지적한다.
사회가 시장의 가치와 효용성을 최고로 여겨 직업 선택의 가치가 변하고 있지만 대학 교육이 졸업생의 실제 취업에 필요한 시장 가치를 키우지 못한다는 것.
고려대 교육학과 권대봉(權大鳳) 교수는 “모든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학제를 다선형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며 “외국과 같이 고교에서 실업 교육을 확대해 학교 시스템과 노동시장 시스템이 맞아 떨어지게 하는 것도 한 방편”이라고 지적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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