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위원장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단 한번도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1999년 2월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 중단을 요구하면서 탈퇴한 노사정위원회 복귀 문제를 거론하자 목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강하게 말했다.
“제조업 공동화,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문제 등은 분명 노사정이 함께 풀어야 한다. 민주노총도 이 부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통령 자문기구 형식의 노사정위는 노동계 현안을 푸는 데 적절치 않다. 아무리 노사정이 합의를 해도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합의에 도달하면 이를 반드시 이행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삼미특수강이 포항제철로 넘어가면서 고용승계 문제 등에 대해 노사정이 합의를 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주40시간 근무제도 노사정이 합의한 내용보다 후퇴된 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합의만 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불신만 쌓인다. 노사정위가 인권위원회나 부패방지위원회처럼 독립적인 기구로 다시 만들어진다면 적극 참여할 것이다. 또 실질적인 당사자인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야 한다. 공익위원이 중심이 된 현행 노사정위의 틀도 바꿔야 한다.”
노사정위 복귀 문제와 관련해 그는 도중에 말을 끊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현재 노사정위보다 독립적이고 집행능력이 있는 행정기구가 만들어진다면 정부나 사용자의 제안을 기다리지 않고 민주노총이 먼저 노동 현안을 풀기 위해 각종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정책이란 것은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그만한 능력이 있을지가 궁금했다.
“정부의 정책연구소와 버금가는 정책연구원을 만들 생각이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독점하고 자기 방식으로 정보를 가공해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도 박사급 연구원들을 뽑고 진보적 대학교수를 모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생산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건물 등 부동산만 받기로 했다. 직접적인 돈은 받지 않는다.”
예상치도 않은 얘기들이 쏟아졌다. 내친 김에 질문의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한국노총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임금 안정에 협조할 의사를 밝혔다. 민주노총은 국민의 염원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참여할 의향은 없는가.
“무조건 모여 합의를 하고 보자는 식은 곤란하다. 현재의 노사관계 수준에 맞는 논의를 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더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일시적인 일자리 창출에만 초점을 맞춰 이벤트성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총선용 선심정책에 불과하다. 현재 실업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좀 더 종합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잘랐다가 필요하면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일관성 없는 고용정책은 지양돼야 한다. 정부와 사용자가 노동자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신뢰를 구축한다면 현장 조합원을 설득하고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임금 안정 없는 일자리 창출은 힘든 것 아닌가.
“임금 안정을 전제로 한 일자리 창출에 동의할 수 없다. 재계 등 일부에선 네덜란드와 아일랜드의 예를 들면서 임금 동결 내지 삭감을 주장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그 나라들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지도 않고 노사가 서로 신뢰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데….
“노동기본권을 위축시키고 사용자의 대항권은 강화시키는 불평등한 로드맵은 수용할 수 없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다 보니 문제가 많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시간이 필요하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논의한다면 언제든지 대화하고 교섭에 나서겠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는 민노총도 사각지대가 아닌가.
“기본적으로 근로자파견법 등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법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사용자는 노동자를 신뢰하고 긴 안목으로 정규직을 채용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노동자가 열심히 일할 수는 없다. 그리고 노동자의 절반이 여성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으로 상대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의식을 바꿔야 한다. 제도적으로도 여성할당제 등을 통해 여성노동자의 힘을 키워야 한다. 여성 중심의 문화가 직장 내에서 꽃필 수 있게 노조도 노력해야 한다. 민노총은 대의원 회의시간에 애들을 맘놓고 맡길 수 있는 탁아시설을 운영할 계획이다.”
―올해 총선에서 노동계가 원내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가.
“이번 총선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절호의 기회다. 울산 창원 등 노동자 밀집지역 등에서 4, 5석을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비례대표를 합치면 적어도 10석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역동적으로 변하는 정치상황을 고려하면 두 자릿수도 노려볼 만하다.”
―위원장 임기를 마치면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것인가.
“기본적인 생각은 돌아가는 것이다. 교사를 소명으로 알고 평생 교사로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기를 마칠 무렵 또는 그 이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주변에서 역할을 요구한다면 모르겠다. 이번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것도 주위의 강력한 요구가 작용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약력▼
△ 1974년 경북 울진군 제동중학교 국어교사
△ 1989년 전교조 결성과 함께 해직
△ 1998년 선린인터넷고 복직
△ 1999년 민주노총 사무총장
△ 2001년 전교조 위원장
△ 해직기간 중 국민연합 집행위원장, 교육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 노동운동 기간에 전교조 결성 주도로 6개월, 국민연합 집행원장 재직시 강경대씨 분신 정국 주도로1년6개월 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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