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교수=문화가 뭘까?
▽한승기=음식이나 옷처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드는 방식이 지속되면서 전통이 된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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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성=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되고 공유하는 거요.
▽원주희=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한 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문영란=좋다, 나쁘다의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의 생산품이라고 생각해요.
▽김 교수=모두 맞아. 하지만 그렇게 설명하면 문화가 ‘삶’이나 ‘사회’와 개념적으로 잘 구분되지 않지. 소설 ‘어린 왕자’의 한 장면을 통해 문화가 사회 혹은 삶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까?
#‘어린왕자’의 한 장면을 예로 들다=여우는 지구에 온 어린왕자에게 “날 좀 길들여줘”라고 말한다. 왕자는 “길들인다는 게 뭔데?”라고 되묻고 여우는 대답한다. “그건 관계를 맺는 거야. 첫째 굉장한 인내심을 가져야 해. 넌 나한테서 좀 떨어져서 저기 풀밭에 앉아 있어. 그리고 내가 살짝살짝 곁눈질할 때마다 조금씩 다가와.”
▽김 교수=누가 누구를 길들인 걸까? 여우가 길들여달라고 했지만 실은 여우가 왕자를 길들인 게 아닐까? 여우가 왕자에게 지시했고 왕자는 거기에 따랐잖아. 결국에는 서로 길들여져 관계가 생기겠지. 누군가를 길들이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 그에게 길들여져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어.
▽최주선=그렇다면 사회는 관계고 길들여지는 방식은 문화겠군요?
▽김 교수=그래, 문화는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매개하는 방식이고 소통하는 방식이야. 사람들은 관계를 매개하는 방식들을 생산하지. 그건 휴대전화, 컴퓨터처럼 하드웨어이기도 하고 무형의 방식일 수도 있겠지. 이 매개 방식, 즉 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영화 ‘유브 갓 메일’을 보고 한번 생각해보자.
#‘유브 갓 메일’(멕 라이언, 톰 행크스 주연·1998)의 첫 20분을 감상=미국 뉴욕에 사는 남녀가 인터넷을 통해 만난다. 상대의 인적 상황은 모른 채 e메일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점점 더 호감을 갖게 된다.
▽김 교수=각자 연인이 있는 이들이 e메일로 글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얼마나 진지해지는지, 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한번 봐.
▽임대희=하지만 e메일이나 메신저도 대부분은 직접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한 후 하게 되는 거니까 성질이 다른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한승기=어떤 매개 방식이든 직접 관계를 맺는 것과는 달리 생략되거나 변질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실성은 부족한 것 같아요.
▽김정상=전 좀 생각이 달라요. 예를 들어 채팅을 할 때도 이모티콘을 써서 직접 누군가를 만날 때처럼 자기감정을 드러낼 수 있어요. 매개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관계의 간접성을 보완하는 거죠.
#인터넷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저자 귀여니)에 대해 토론=참석자들은 ‘그놈은…’이 통신용어와 이모티콘을 활용해 신세대 감성을 반영했다는 평과 이 소설이 한글을 훼손하고 감각적 가벼움만 추구했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왔다는 점을 동시에 지적했다.
▽염동훈=인터넷 소설이 기존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을지는 의문이에요. 문화활동을 하는 이유 중에는 ‘남보다 많이, 깊이 있게 알아서 뭔가 달라 보이고 싶다’는 욕구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인터넷 소설은 가볍기만 하죠.
▽곽지영=인터넷 소설이 단순한 패턴과 가벼움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깊이를 확보한다면 새로운 문화형식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원주희=아무리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문화생산물이라 해도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새로운 사고방식을 알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김 교수=현대는 과거와 달리 문화 현상의 시작이 한 사회의 상층부뿐 아니라 하층에서도 이뤄지고 있어. 다만 한 현상이 문화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의미와 재미, 두 가지가 다 있어야하지. 여기서 필요한 게 노력이야.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스스로의 문화 환경을 관찰하고, 자기에게 없는 부분에 대한 경험을 채워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지. 수학의 미적분이나 고전(古典), 인터넷소설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야. 직접 활용하지 않는다 해도 무언가에 대한 경험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감성을 확장하니까.
정리=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문화관찰자 되면 삶이 행복해져요▼
현대문화는 ‘블랙홀’과 같아서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괴력을 지니고 있다. 아니면 적어도 거머리 같아서 ‘모든 사람’에게 달라붙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문화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만인의 문화’인 것이다. 이 같은 현대문화의 총체적 흡인성 또는 다식성(多食性)은, 한때 막연히 존재했던 ‘대중문화’라는 카테고리를 별로 쓸모없게 만들었다. 오늘날 문화를 대할 때는 범주 나누기에 연연하지 말고 ‘사람들의 문화’를 다룬다는 생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현대문화는 한편으론 블랙홀과 같고 다른 한편으론 투명한 상대다. 현대문화가 제시하는 강한 흡인력과 투명하기까지 한 명백함의 장치들 속에서, ‘활동’할 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빨려 들어가 같이 놀아주고, 거칠 것 없는 공간에서 내 멋대로 놀면 된다. 그러나 현대문화를 ‘관찰’하고자 할 때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당혹스러워진다. 오히려 그 깜깜함과 투명함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가 문화의 세기에 다시 부각되는 것은 이 점에서 더 타당성을 얻을지도 모른다. 논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좋은 것이다. 누구든 평생 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한 번쯤은 가져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놀고만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가상적 정지’, 즉 사유를 위한 기회의 순간들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전체 생애의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문화와 놀면서도 문화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문화와 다시 더 재미있게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석 교수의 저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2000년) 중에서―
▼재미있는 영화-애니 '문화'이해 도와줘요▼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드 프린세스’(1999)=공주와 왕자가 등장하고 권선징악의 주제를 다루는 전형적인 동화. 그러나 공주를 얻기 위해서는 편견 없는 관찰과 노력, 그리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리적 자질과 문화적 능력의 조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 ‘치킨런’(2000)=현실에 환상성, 즉 판타지를 끌어들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만화영화. 작품 속에서 양계장이라는 일상의 현실과 닭들이 말하는 환상의 세계가 뒤섞여 있는 방식이 그것이다.
○영화 ‘기사 윌리엄’(A Knight's Tale·2001)=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중 첫번째 에피소드 ‘기사 이야기(The Knight's Tale)’를 패러디했다. 고전과 현대 대중문화가 상호 협동적으로 재생산된 사례. 고전읽기가 시나리오 제작이나 영화 감상처럼 문화 생산과 소비 두 가지 측면에서 현대적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영화 ‘맨인블랙’(1997)=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서사 구조 속에서 서구의 철학과 전통적 의식구조를 읽어볼 수 있다. 특히 영화의 핵심 소재인 ‘고양이의 작은 방울 속에 들어 있는 거대한 은하계’는 우주적 확장이 극소와 극대로 동시에 이뤄진다는 서구의 기본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학생 참석자▼
김정상(18·개포고 2)
원주희(17·개포고 1)
민혜성(17·중대부고 1)
염동훈(19·영일고 3)
임대희(19·영일고 3)
한승기(19·영일고 3)
문영란(18·상명사대 부속여고 3)
곽지영(19·상명사대 부속여고 3)
최주선(19·상명사대 부속여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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