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말죽거리'와 '효자동'

  • 입력 2004년 1월 30일 14시 28분


최근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아직 개봉 전이지만 송강호 문소리가 출연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제목에 서울의 지명이 들어가 있으며 1960~70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 그러나 이들 동네의 현재는 매우 다르다. 말죽거리는 '촌 동네'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뤘지만 효자동은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강남불패'의 원조, 말죽거리='말죽거리 잔혹사'는 유신시절 고등학생들의 사랑과 우정에 관한 학원 액션물. 배경이 되는 말죽거리는 현재 지하철 3호선 양재역 부근이다.

말죽거리라는 이름은 제주도에서 올려 보낸 말을 서울로 보내기 전에 이 곳에서 손질하고 말죽을 쑤어 먹였기 때문에 붙었다는 설과 조선조 '이괄의 난' 때 피난 가던 인조가 말 위에서 팥죽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영화 속에서 강남으로 전학 온 현수(권상우 분)는 "강남의 땅 값이 엄청나게 오를 거라는 엄마의 말 때문에 이 곳으로 이사왔다"고 말한다.

실존 인물이라면 현수네는 부자가 됐을 것. 이 지역은 70년대 후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사업으로 한 평 수십원짜리 땅이 현재 주거지역은 평당 1300만~1500만원, 상업지역은 3000만원이 넘는 '강남불패'의 원조격인 동네다.

현재는 주변에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도곡동과 인접해 서초구청이 있고 '부의 상징'처럼 돼버린 타워팰리스도 가까워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 중 한 곳이 됐다.

당시 경기도 시흥군이었던 말죽거리에서 나고 자란 안상철씨(68)는 "어릴 적엔 논밭 뿐이었는데 경부고속도로, 한남대교가 생기면서 땅값이 막 올랐다"며 "아들의 말에 의하면 당시 말죽거리 부근 애들이 영화에서처럼 싸움 좀 했다더라"며 웃었다.

▽권력자와 가장 가깝지만 평범한 동네, 효자동=5월 개봉을 앞둔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배경은 종로구 효자동. 효자동은 청와대가 있는 동네로 알려졌지만 사실 청와대는 행정구역 상 청운동이고 효자동은 바로 옆 동네다.

조수완(趙秀完) 효자동장은 "이곳에 살았던 조선시대 대학자 조원(趙瑗)의 두 아들이 효성이 지극해 나라에서 이를 기리는 문을 세워줬고 이 문이 예전에 효자동 100번지에 있어 효자동이라 불리게 됐다"고 말했다.

효자동은 청와대와 가깝고 경복궁, 인왕산과도 인접해 7층의 고도제한이 있다. 때문에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고 상업지역도 없는 조용한 동네다. 지금의 주택가도 일제시대 때 구획 정리된 그대로의 모습일 정도.

영화 속에서 이발사 성한모(송강호 분)는 소심하고 평범한 이발사지만 청와대 주변에 산다는 이유로 4·19, 5·16 등 격동의 현대사 현장에 서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다. 동네 이발사인 동시에 '각하'의 말 한 마디가 곧 법이던 시대에 '그 분'의 머리를 깎는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된 것. 그래서 '효자동'에는 '평범함'과 '권력'이라는 상반된 두 의미가 있다.

효자동 터줏대감인 이종대씨(69)는 "6·25 때 시가전, 4·19 때 학생들이 몰려오던 것 등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예전에는 청와대 주변을 맘대로 지나다니지도 못했지만 문민정부 때부터 나아졌다"고 말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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