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예술과 외설사이…누드모델 돼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04년 2월 5일 15시 47분


성현아 이지현 권민중 이혜영…. 지난해 누드 사진집을 낸 연예인들이다. 예술인지 상술인지 말도 많았지만 만든 이와 보는 이의 생각은 분명히 다를 것 같다.
벗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왜 벗을까.
각자 벗는 목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그 심리에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신문에, 방송에 나오는 뻔한 말이 아닌 그 어떤 것을.
그래서 나도 벗었다.
●나는 왜?
기자생활 8년. ‘기사만 안 쓰면 기자같이 좋은 직업도 없다’는 우스갯 말처럼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이 가장 큰 숙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직업의 사람들이 그렇듯 세상에서 ‘아이디어(魚)’라는 물고기가 가장 싫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나에게는 ‘현장체험’이라는 고정 코너가 있다는 점.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평소보다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몸부림치고 있다.
고정 코너를 시작하면서 “아이디어가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농담으로 “정 안 되면 옷이라도 벗지”라고 웃어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어느 날 ‘기사만 된다면 못 벗을 것도 없겠다’란 각오가 들었다. 동시에 ‘아하, 그녀들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떠오른다.
아무튼 인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여배우가 누드집을 내는 경우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화가를 섭외하고 사진기자와 함께 화실 문을 열었다. 나는 프로인가, 아니면 인기를 위해 몸까지 파는 3류인가.
● 가운을 벗다

화가 류영도(45). 25년간 누드만 전문적으로 그려온 중견 작가. 오늘 그리는 작업은 대상 크로키로 일종의 스케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한번 작업이 3시간. 20분 포즈 취하고 10분 쉬고를 반복한다. 작은 작품일 경우 일주일에 4, 5번을 거치면 그림이 완성된다. 물론 대작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운을 벗자 일단 춥다는 것 외에는 별 느낌이 없다. 그리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모델도 모두 남자이니 그다지 창피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목욕탕하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
류 작가는 “포즈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가가 구상하는 그 무엇을 일차적으로 모델의 포즈를 통해 나타내기 때문이다.
등받이에 기대앉은 채 왼쪽 다리를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작품명이 뭐지?’
작가마다 화풍이 다르지만 그는 여체-그중에서도 머리는 작고 히프가 큰 완벽한 몸매-를 선호한다. 그가 표현하고 싶은 테마가 주로 풋풋한 ‘젊은이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테마는 혹시 ‘젊음의 그늘?’. 시간이 흐를수록 자세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리는 사람도, 포즈를 취한 사람도 서로 고통스러운 것 같다.
●노출 수위 신경전
사진기자가 셔터를 눌러댄다. 화가는 뒷모습을 그리는데 왜 자꾸 앞에서 어슬렁거리나. 혹시 이 선배가?
그림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작 신경전은 사진에서 발생했다.
“윤곽이 다 나올 필요는 없잖아요.”
“잘 알아서 해줄게. 걱정 마.”
벗는 심리를 취재하는 것이지 기자 누드를 내보내려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강하게 항변.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결국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봤다.
사진 공개에 대한 이런 저항감은 다른 모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문 모델들은 이름과 얼굴 사진이 공개되는 경우가 있지만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철저히 비밀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조차도 누드모델을 하는지 모른다.
내 경우에는 이름과 얼굴이 지면을 통해 공개되니 노출 수위가 심하면 아주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것 같았다. 수억원을 모델료로 주는 것도 아닌데 차마 그렇게 나갈 수 는 없었다. 역시 진정한 프로는 아닌가보다.
●몸이 동하면 외설?
‘마음이 동하면 예술이고 몸이 동하면 외설’이란 말이 있지만 사실 경계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류 작가의 경우 지난해 한창 유행한 연예인 누드를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영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 ‘누구의 몸이 이렇게 잘 빠졌다’ 외에 뭐가 있느냐는 설명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그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한다고 했다.
한번은 아침 수업에서 아줌마들에게 누드 그림을 가르치는데 젊은 남자 모델에게서 사고(?)가 났다. 시간이 아침이다 보니 모델의 중요 부위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
그림을 그리려 캔버스로 눈을 돌렸다 다시 보면 조금씩 달라져 있는 모습에 아줌마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도저히 수업을 계속할 수 없어 잠시 쉬고 진행했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단다.
작업과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휑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에라 모르겠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번 기사는 많이 볼 거야. 내용이 어떻든….’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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