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0억원’의 성격=앞으로 1995∼96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신한국당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940억원의 성격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돈의 출처를 놓고 강 의원과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운영차장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
검찰은 당초 “이 돈은 안기부 예산을 신한국당이 유용한 것”으로 결론짓고 강 의원과 김 전 차장을 기소했다.
그러나 강 의원은 6일 항소심 공판에서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940억원을 여러 번에 걸쳐 받았으나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차장은 김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안기부 예산의 이자와 불용액 등 940억원을 모아 신한국당에 전달했으며 김 전 대통령에게는 직접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김 전 차장은 940억원의 출처와 전달된 곳, 전달 과정 등을 상세히 적은 진술서를 다음 공판에서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어서 그 내용에 따라 재판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강 의원측은 “940억원은 김 전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남은 자금이며 단지 안기부 계좌를 통해 ‘돈세탁’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공판에서 강 의원의 변호인들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김 전 대통령 수사와 재판 전망=강 의원의 발언으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수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으나 대검 중수부는 “결정적 근거가 나오지 않는 한 재수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
중수부는 “이미 기소가 끝난 사건에 대해 재수사하려면 공소사실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 근거가 필요하다”며 “김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강 의원의 주장을 시인하거나 변호인이 강 의원의 진술을 뒷받침할 물증을 제시해야만 수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이날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강 의원측의 증인신청을 받아들였지만 김 전 대통령의 태도를 볼 때 이에 응할 가능성은 적다.
김 전 대통령이 증인출석을 거부할 경우 재판부가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꼭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면 김 전 대통령에 대해 구인장을 발부할 수도 있다. 그래도 출석을 거부한다면 원칙적으로는 검찰이 이를 강제로 집행할 수도 있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이 계속 출석을 거부하더라도 현행법상 5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 것이 전부여서 법적으로는 큰 부담이 없다.
설령 그가 법정에 출석하더라도 강 의원의 주장을 전면 부인할 경우 검찰의 재수사는 이뤄지지 않고 법정에서만 진실공방이 계속될 수도 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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