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약을 지어먹듯 마음에 생채기가 있는 이들에게 특별한 처방전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낯선 ‘독서치료사’가 그들. 이들이 처방하는 약은 바로 책이다. 이들에게 책은 마음이 아픈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진단 장비이자 치료제다.
독서치료사를 양성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 사단법인 한국심성교육개발원의 이미선(李美善·46) 이사장은 “독서치료는 독서지도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독서교육”이라고 말했다. 내담자의 심리상태를 파악한 뒤 알맞은 책을 골라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며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
이 이사장은 명절 후유증을 비롯해 가사로 스트레스를 받는 주부에게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권한다. 가족 모두가 이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면 더욱 좋다.
실업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에겐 구본형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와 앤디 앤드루스의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가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워줄 치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진학을 두려워 하는 자녀가 있다면 김영주의 ‘짜장 짬뽕 탕수육’을 선물해 줄 것을 권한다. 공부가 두려운 아이에겐 다니엘 포세트의 ‘칠판 앞에 나가기 싫어’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에겐 헤수스 발라즈의 ‘이자벨’을 추천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독서치료사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는 명작. 이씨는 “독서치료사는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심리상태를 정확히 관찰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이라며 “대상이 없이 제시되는 자료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상담사 양성을 위해 심성교육개발원을 설립한 것은 1996년.
이씨의 첫 직업은 교사였다. 그러나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23세의 꿈 많은 여교사는 2년 만에 교직생활을 접었다. 학생 개개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교과목만을 가르치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
이후 20여년 동안 은행과 외국계 기업 등에서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은 이씨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을 키우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심리상담사라는 민간자격증을 만들어 지금까지 8000여명의 상담사를 양성했다. 이후 진로상담사와 미술치료사 과정을 개설했고 2년 전 독서치료사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약 380명이 독서치료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독서치료 교육의 1차 목표는 남이 아닌 나를 치료하는 데 있다”며 “나아가 모든 도서관의 사서들이 책을 정리하는 역할에서 더 나아가 책을 추천하고 독서 후 토론의 장을 만드는 치료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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