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자리 협약’ 기업 발목 잡지 말아야

  • 입력 2004년 2월 8일 18시 23분


한국노총 한국경총 노동부 대표가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일자리가 갑자기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면 안이한 생각이고 현실을 호도하는 측면까지 있다.

이 협약은 기업이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감원을 억제하면 단기적으로 기존 근로자의 일자리 안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청년 등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는 역효과를 낳는다. 해고를 막을수록 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이 고용시장의 역리(逆理)다. 기업이 해고든 고용이든 유연하게 할 수 있어야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 있고 국내 투자 기피 현상도 줄일 수 있다.

노조측이 협약을 내세워 합리적 감원도 거부한다면 노사관계 불안이 증폭되고 협약이 추구하는 인력 운용의 효율화는커녕 비효율화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 6년 전 외환위기 상황에서 정리해고 원활화를 핵심으로 하는 ‘노사정 대타협’이 이루어졌음에도 강성 노조들과 이에 편승한 정부가 이를 사실상 사문화(死文化)시켰다. 그 결과로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 감소가 현실화됐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협약에는 각각 떼어 보면 그럴듯하지만 목표가 상충돼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내용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과 근로자에게 갖가지 조세 금융 혜택을 주고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재정의 한계 등을 무시하고 단기적 효과만 꾀하면 고용은 지속적으로 늘리지 못하면서 부작용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협약이 총선용이라는 의심도 받는 것이다. 또 협약에는 기업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관행의 근절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한다는 모양을 갖추기 위한 백화점식 협약에 그쳐선 안 된다. 정부는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이번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는 경제를 살려내 함께 살겠다는 자세를 임금 인상 포기 등의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일자리 만들기의 선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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