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도박을 한 날에는 젊은 아내가 자신을 꾸짖도록 간청했다.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도박장에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 그는 노름빚에 쫓겨 40대 후반을 해외에서 떠돌았다.
작품 ‘노름꾼’의 구술(口述)이 인연이 돼 재혼했던 스물다섯 연하의 속기사 아내에게 그는 혹독한 궁핍과 세계문학사의 불후의 명작들을 함께 선사했다. ‘죄와 벌’ ‘백치’ ‘악령’….
그는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넋의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근대소설에서 진정한 현대를 열었다. 카뮈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는 마르크스가 아니라 ‘악령’의 저자”라고 단언한다.
1849년 그는 공상적 사회주의 서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새로운 고골리’로 각광받을 때였다.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시베리아 유배지에서 ‘몸부림치는 짐승’으로 4년을 버텨야 했다. “나는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이 우는 것을 보았다.”
그는 데카르트 시대에 이성(理性)의 바깥에서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봤다. 이성이란 ‘비근한 생리작용’에 지나지 않았다. ‘음탕의 시간이 끝나고 그 형언할 수 없는 메스꺼움을 느낄 때에야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 발작적으로 피어난다.’
그의 소설은 당시 ‘웃자라던’ 이성에 대한 모욕이었다. 혐오였다.
‘미성년’의 베르시로프, ‘악령’의 스타브로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이반…. 작품에는 ‘19세기의 햄릿’이 배회한다.
중세(中世)의 지옥보다 더 끔찍한 인간의 지옥을 경험했던 도스토예프스키. 그럼에도 그는 이 생의 시궁창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찾고자 했다.
“인생! 일단 이 커다란 술잔에 입을 댄 이상,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셔 버리기 전에는 결코 잔에서 입을 떼지 않으리….”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