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반민특위>가 왜 필요한가.
한나라당은 이 법안이 너무 광범하고 모호해서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원초적인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부 역시 친일문제는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망하거나 연로해, 증인과 참고인의 <일방적 진술>을 막을 장치가 없고 후손들의 반발로 인해 국민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정부당국자가 법사위 심의과정에서 반대입장을 표명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욕설을 퍼부은 사건까지 있었다. 이 법안은 작년2월 친일반민족행위자 692명을 발표하고 광복회가 명단 공개를 꺼린 16명도 일방적으로 발표해 말썽을 일으킨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이 주축이 되어 발의되었다.
두 번째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을 둘러싼 논란이다. 이 사업은 원래 친일문제 연구가인 사학자 임종국씨가 추진하다가 완성을 못본 사업으로 현재 한 민간연구소가 승계하여 벌이고 있다. 이 사전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는 것인데 그 취지는 좋지만 실제상으로는 문제가 많다.
이 사전은 반민특위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인물만 등재하는 것이 아니고, 무죄판결을 받았거나 기소되지도 않았고 전혀 조사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인물들까지 친일인사로 규정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전편찬위는 4차년도인 내년에 <누구나 승인할 수 있는 적절한 과정을 통해> 수록할 친일인물을 선정 발표하고 집필작업에 들어가 5차년도인 2006년에 사전을 출간할 계획이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친일 인물 선정을 위해 공청회도 거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일종의 사설재판이나 인민재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과거의 반민특위는 미지근한 친일파 처리를 했다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법에 근거해서 설치된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당사자와 증인의 진술을 들은 다음 재판이라는 절차를 통해 친일여부를 판단했었다. 나 역시 당시의 반민특위활동에 대해서는 실망한 사람중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와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가 학문연구의 입장에서, 또는 개인, 또는 사설단체가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차원에서 이같은 작업을 벌인다면 그것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사회에서 자신들의 책임아래서 행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공정한 내용이 되고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익한 작업이 되기를 나같은 사람은 바랄 뿐이다.
문제는 이 사업에 국가예산이 지원됨으로해서 준(準)국가사업으로 성격이 변경된데 있다.
그 동안 국가예산은 이 사업의 1차년도인 2002년에 2억원, 2차년도인 2003년에는 2억원이 이미 지원되었다. 1차년도때인 재작년 1월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회의에서 많은 의원들이 민간사업에 국고지원을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한 바있다. 이런 주장들 때문인지 지난 연말 국회 예결위는 2004년도 분 5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이렇게 되자 이 사업추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이에 맞서 공동으로 민간모금운동을 벌여 열흘만에 5억원을 모았다.정부당국은 당초에는 모금운동의 불법성을 들어 이를 금지했다가 불과 몇 시간 후 취소하는 혼선을 빚은 끝에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국무회의에서 모금운동을 허가하기로 의결했다. 결국 정부가 국가예산지원 대신 기부금모집허가를 통해 이 사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로 한 셈이다.
<친일인명사전>의 선정기준
세 번째는 가장 우려스러운 일이 현실로 나타난 점이다. 최근에 문제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안>의 발의자인 열린우리당의 김희선 의원이 이 법안에 서명을 거부한 민주당대표 조순형의원의 부친 조병옥박사가 친일파였다고 비난하고 조대표에게 입을 다물라고 요구한 사건이다. 또한 민족정기선양회라는 시민단체는 박관용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의 최돈웅, 박근혜 두 의원의 아버지가 친일행위를 했다해서 이들의 의원직 사퇴를 주장해 파문이 일어났다. 친일행위를 이유로 그 후손을 매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써 일어난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이 정치적 이해와 관련이 있다면 이것은 민족문제를 오도하는 무책임한행동이다.
최근들어 우리 국내에서는 반미바람을 타고 친일파는 친미파의 뿌리라고 하면서 친일파와 친미파를 모조리 쓸어내자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만약 친일청산문제가 이렇게 발전한다면 이는 극히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동욱(전 동아일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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