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대학(언론학)과 언론계라는 두 세계에서 ‘양서류(兩棲類)처럼’ 살아온 사람, 예술사상 국제정치 근현대사 등 수많은 분야를 섭렵하며 특유의 통찰력을 보여온 문사(文士)이자 논객. 최정호 동아일보 객원대기자(울산대 석좌교수)가 ‘한국문화’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문화유산의 해’였던 1997년 한 일간지에 연재한 ‘우리 문화유산 기행’을 책 1부에, ‘한국문화의 미래: 제3의 르네상스’라고 이름붙인 우리 문화에 관한 시론을 2부에 담았다.
저자는 한국 문화유산의 긍정적 적극적 특수성을 ‘자연스러움, 편안함, 평화스러움’에서 찾아낸다. 규모가 큰 것, 기교가 넘치는 것, 그저 예쁘고 화려한 것을 배제한 지평 위에서 절로 부각되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이갠티즘(Gigantism·거대주의)은 한국문화와 가장 거리가 먼 범주가 된다. 덮어놓고 규모가 큰 것만 지향하는 것을 유치하게 보고, 기교만 앞세우는 것을 천박한 것으로 보는 미의식이 여기서 탄생한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의 양립(兩立)에서 저자는 ‘마치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한자리에 공존하고 있는’ 것 같은 일반과 특수, 남성성과 여성성, 일(一)과 다(多)의 변증법을 본다.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의 공존, 비대칭인 것의 대칭, 일치하지 않는 것의 합일 속에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문화의 본질, 음과 양이 서로의 꼬리를 물어 하나의 원융(圓融)을 이루는 태극사상에 바탕한 한국문화의 본질, 바로 그러한 것이 한국문화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잘못일까….”
오랫동안 한국문화사의 ‘찢겨진 장’이요 ‘콩샹스 샤르제’(프랑스어로 꺼림칙한 부담)였던 백제 문화. 먼 길을 돌아들어가 비로소 그 진수를 대한 저자의 희열을 책장에서 피어오르는 훅 하는 열기로 느낄 수 있다. 일본 호류지(法隆寺)에서 본 ‘구다라간농(百濟觀音)’. 봄바람에 하늘거리듯 볼륨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 관음상에서 그는 ‘뒤에 만나게 되는 모든 백제적인 것의 원형’을 보았다고 토로한다. ‘가벼움, 무게를 벗어난 가벼움, 너울거리는 불꽃의 가벼움…. 그러고 보니 백제관음상에는 중심이 없어 보인다. 위로 하늘을 향해 승천하려는 듯, 마치 불꽃 모양의 광배처럼….’
저자는 흥미롭게도 한국에 12세기 고려청자의 시대, 15세기 세종 시대, 18세기 영·정조 시대 등 300년 주기의 문화 융성기가 있음을 지적한다. 21세기에 다시 도래할 한국문화 중흥기를 대비하자는 예언과도 같은 당부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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