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바고 어길땐 논문게재 취소등 해당 과학자 피해

  • 입력 2004년 2월 14일 07시 06분


한국의 과학자들이 일부 언론의 ‘엠바고 파기’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특히 ‘사이언스’ ‘네이처’ ‘셀’과 같은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과학자일수록 더 그렇다. 일부 기자들이 엠바고를 깨는 바람에 앞으로도 논문을 실어야 하는 과학전문 매체와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박사는 “세계적인 학술지일수록 논문을 게재할 때 아예 보도 발표시점을 정해준다”며 “과학계의 이런 엠바고 전통은 이미 수십년간 지속돼 상식으로 통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과학전문지에서 엠바고 전통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 물리학과 오세정 교수는 “엠바고는 잘못된 연구내용이 과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일반인에게 노출되는 일을 막는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과학전문지가 발표를 하는 시기가 바로 연구내용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시점이라는 것.

과학전문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점도 있다.

2002년에 ‘위암 억제 유전자’를 발견한 충북대 의대 배석철 교수는 “세계적 전문지의 생명은 새로운 발견을 최초로 소개하는 것”이라며 “만일 다른 언론에서 먼저 보도해버리면 전문지는 적지 않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엠바고가 깨질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과학자 자신이다.

생명공학 벤처기업 툴젠의 김진수 대표는 “전문지가 ‘당한’ 경우 나중에 해당 연구자의 논문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일이 생기면 결국 세계 과학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실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위암 억제 유전자 논문을 과학전문지 ‘셀’ 2002년 4월호에 게재키로 하고 셀의 요청으로 엠바고 시점을 4월 4일로 잡았으나 중앙일보 홍혜걸 기자가 사전에 엠바고를 깨고 보도해 셀의 항의를 받고 해명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고 밝혔다.

또 배 교수는 “결정적인 타격은 신뢰의 손상”이라며 “엠바고가 깨지면 과학전문지 입장에서는 과학자가 인기를 위해 언론에 흘렸다고 의심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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