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우레탄폼 재질의 인공동굴을 지나던 회사원 서홍남씨(33)는 이렇게 말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1주년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이 인공동굴로 다니는 것이 다시 불안해집니다. 불이라도 나면 독가스 터널이 될 텐데 대구 같은 피해가 나지 않을까요?”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이후 많은 자치단체가 지하철 역사(驛舍)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여러 가지 면에서 미진하다.
▽제연(除煙)시설=대구 참사에서 드러났듯 지하역사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유독가스와 연기다. 그러나 연기와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제연시설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대구지하철공사는 사고 현장인 중앙로역 승강장 출입구에 물을 이용해 연기와 가스를 차단하는 최첨단 ‘수막차단벽’을 전국 최초로 설치했다. 그러나 나머지 29개 역사엔 특별한 제연시설이 없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지하역사 95곳 가운데 제연시설이 있는 역은 45곳. 대구 참사 이후 불과 5곳이 추가됐을 뿐이고 1970년대에 건설된 1호선에는 하나도 없다.
부산지하철 62개 지하역사의 경우에는 계단 및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연기를 차단하는 제연경계벽이 없다. 제연시설 역시 용량이 적어 화재시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를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인천지하철 역시 계단 구간에 제연설비가 전혀 없다.
▽인테리어=화재가 났을 때 불에 타기 쉬운 데다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인테리어 자재도 개선이 더디다.
지난해 서울시는 충무로역과 영등포시장역 등 5곳의 우레탄폼 재질 인공동굴을 올해 말까지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2005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전국의 모든 지하철 역사에 10여개씩 붙어 있는 아크릴 재질의 광고판도 문제. 각 자치단체는 광고판의 틀을 스테인리스스틸로 바꾸고 아크릴 표면을 방염처리하겠다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개선된 사례는 거의 없다.
▽대피 유도장치 및 소화시설 등=화재가 나면 정전이 되기 때문에 출구를 안내하는 비상유도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4월 개통 예정인 광주지하철은 30럭스에 30분 이상 발광하도록 해 양호한 편.
대구지하철은 중앙로역에 4시간 이상 발광 가능한 축광형(蓄光型) 타일을 설치했지만 이 역시 중앙로역 한 곳에만 있을 뿐이다.
용인대 김태환 교수(도시방재학)는 “비상시 승객들이 머리를 숙이고 대피하기 때문에 유도등의 위치를 바닥이나 계단의 난간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터널구간에 소화장비가 부족한 것도 문제점. 서울지하철 1∼4호선 터널엔 소화장비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 외에 성능이 떨어지는 화재탐지기, 절대 부족한 비상마스크, 녹화시설이 부족한 폐쇄회로(CC)TV 등도 개선해야 할 점. 서울도시철도공사 5∼8호선 관계자는 “모든 역사에 화재탐지기가 있긴 하지만 열차가 드나들 때 감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각 자치단체는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엄청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새로운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점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서울지하철 역사 안전시설 현황 | 시설 | 1∼4호선 | 5∼8호선 |
제연(환기)시설 | 지하역사 95곳 중 45곳에 설치.1호선 전혀 없음 | 지하역사 145곳 모두 설치 |
제연경계벽 | 지하역사 95곳 중 35곳에 설치 | 지하역사 145곳 중 36곳 |
소화전 스프링클러 | 모든 역에 설치. 역당 소화전 10개, 스프링클러 400개 내외.20분 사용 가능 | |
비상유도등 | 모든 역에 설치. 밝기 1룩스.정전 시 20분 지속 가능 | 모든 역에 설치. 밝기 1∼6룩스, 정전 시 지속시간 20∼60분 |
화재탐지기 | 모든 역에 설치. 역당 평균 120개 | |
폐쇄회로TV | 모든 역에 설치. 녹화시설 미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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