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崔秉烈) 대표는 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 책임론을 제기하며 국면 반전을 시도했으나 최 대표 퇴진을 요구한 당내 소장파 진영이 거세게 반발해 내분은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검찰이 재작년 대통령선거 당시의 ‘입당파’ 의원들에게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칼끝을 겨누기 시작한 것도 부담이 되고 있다.
▽정면 돌파에 나선 최 대표=최 대표는 이날 이 전 총재와 대선 당시 지휘부였던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를 ‘밟고’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최 대표의 ‘강수(强手)’엔 자신은 대선자금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듯했다.
최 대표는 파문이 일 것을 우려해 “이 전 총재와의 ‘절연(絶緣)’은 아니다”고 극구 해명했다. 그러나 발언 곳곳에선 사실상 이 전 총재측과 절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나중에 삭제했지만 원고 초안에는 “이 전 총재는 역사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는 후문이다.
당내에서 최 대표가 17대 총선 공천권을 무기 삼아 이 전 총재측 인사들을 배제할 것이란 얘기가 나도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 대표가 당내 소장파와 비주류 진영의 퇴진 요구를 일축하고 정면 돌파 의지를 내비친 데는 비주류 진영의 구심점이 없어 세 결집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 홍준표(洪準杓) 전략기획위원장은 “최 대표의 지위는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소장파 반발, 당 내분 확산=그러나 상황은 최 대표측이 낙관하듯이 간단치만은 않다. 이 전 총재측과 당내 소장파 진영의 분위기는 격앙돼 있다. 최 대표가 정작 자신의 ‘희생적’ 결단은 외면한 채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에선 최 대표 발언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측근은 “이 전 총재가 언제 검찰 수사를 회피했느냐”고 반문한 뒤 “최 대표가 책임을 떠넘긴다고 사태가 해결되나”라고 비판했다.
이 전 총재 지지자 20여명은 이날 저녁 한나라당사 앞에서 최 대표를 비난하는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 소장파 의원은 “남 탓이나 하는 최 대표를 누가 따르겠느냐”며 “이런 식이면 수도권 선거를 치르기 힘들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지도부 퇴진 투쟁 수위를 한 차원 높일 태세다. 남경필(南景弼) 의원은 “소장파 중심의 논의 틀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며 세 규합에 나설 뜻을 밝혔다. 수도권 의원들의 동조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양측의 힘겨루기가 계속될 경우 한나라당은 총선 전 분당(分黨)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파장=검찰이 대선기간 중 민주당과 자민련에서 당적을 옮긴 ‘입당파’ 의원들의 대선자금 비리 의혹 수사에 나선 것도 당으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해당 의원들은 검찰이 밝힌 혐의 내용에 대해 한결같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당 지도부는 검찰이 유독 입당파 의원들을 겨냥한 데 의구심을 보였다. 한 당직자는 “안 그래도 ‘철새 정치인’이란 비난 공세를 받는 이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다면 이들이 과연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느냐”며 표적사정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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