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의 단서는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의 핵심 당직자였던 김영일(金榮馹) 의원과 이재현(李載賢) 전 재정국장의 진술에서 나왔다.
김 의원과 이 전 국장은 올해 1월과 지난해 12월 각각 구속된 뒤 수십 차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인물.
검찰은 우선 김 의원과 이 전 국장을 상대로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에서 모금한 불법 자금의 규모와 행방을 추궁했으나 이들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대선자금 유용 의혹에 연루된 의원들의 명단을 털어놓은 시점은 지난주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두 사람이 대기업에서 불법 모금한 돈을 다른 당직자에게 건네주지 않았다면 개인적으로 빼돌린 것 아니냐며 추가로 기소할 방침을 내비치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또 한나라당 계좌 추적 결과를 들이대면서 자금의 구체적 흐름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수사팀의 압박에 따라 이들은 우선 민주당이 단일 후보를 내세우기 이전 민주당에서 탈당한 전용학(田溶鶴) 김원길(金元吉) 의원 등이 5000만원 이상의 스카우트비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김 의원과 이 전 국장의 진술을 토대로 불법 자금을 받은 의원이 보관한 돈과 지구당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부 의원이 상당액을 차명계좌 등에 빼돌린 정황도 확인했다.
검찰은 중앙당이 지급한 선거자금이라도 불법 자금인지 알고 받았을 경우 자금세탁방지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보고 일정 금액 이상을 받은 의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2억원이 처벌 기준”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대선자금 유용 의혹을 받고 있는 이들 의원이 모두 형사처벌될지는 다소 유동적이다. 국세청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대선 자금 모금 사건인 ‘세풍(稅風) 사건’ 수사 당시에도 불법 모금에 관여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처벌됐으나 세풍자금 유용 사실이 적발된 의원들은 대부분 처벌을 면했다.
검찰로서는 편파수사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한나라당 의원들만을 처벌할 경우 더욱 부담이 커진다는 고민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선 자금 유용 의혹에 연루된 의원들이 돈을 받을 당시 불법 자금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입당 대가 등으로 불법 자금 지원을 요구했는지 등 범의(犯意)를 구체적으로 조사한 뒤에야 형사처벌 수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의원 | 해명 |
전용학 | “나는 당을 옮기면서 지구당을 넘겨받았다. 중앙당 지원금은 이 지구당을 통해 선거 운동하는 데 다 썼다. 오히려 내 돈이 더 들어갔다.” |
김원길 | “개인 후원회 사무실을 운영하며 선거운동하는 비용으로 썼다. 밥 값만 수천만원에 달했다. 신용카드 사용 내용 보면 다 나온다. 내 돈이 몇 배 더 들어갔다.” |
박상규 | “입당한 뒤 중앙당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탈당에 반발하는 지역구민들을 달래고 함께 입당한 의원들의 모임 대표로서 모임을 운영하는 비용으로 썼다.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은 전혀 없다.” |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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