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대에 연기를 대신해 연막탄을 터뜨렸고 승객을 가장한 직원 1명이 전동차에 탑승해 비상버튼을 눌러 기관사에게 화재를 신고했다. 기관사는 곧바로 종합사령실에 연락했고 사령실은 다시 역에 연락했다. 이어 역무원과 공익요원들이 승객을 계단으로 대피시켰다.
대구 참사 이후 전국의 지하철역에서는 수시로 비상훈련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날처럼 종합적인 대피훈련은 3, 4개월에 한 번 정도. 대부분 소화기 비상벨 수동개폐기 작동 요령을 익히는 초보적인 훈련이 고작이다.
▽비상훈련 및 시스템=대구 참사 당시에 기관사 역무원 종합사령실은 모두 허둥대다 화를 키웠다. 제대로 된 훈련도 없었고 비상시 대처 매뉴얼도 엉성했기 때문이다.
부산지하철의 경우 분기별로 1회 정도 훈련을 하고 있지만 출입문 조작, 비상벨 작동요령 등 승객체험훈련이 주종이다. 소방서와 합동으로 화재를 가상한 종합훈련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대구지하철공사는 1300여명의 직원을 상대로 2개월마다 안전교육을 실시하지만 직원 가운데 안전교육 전문가가 1명도 없는 실정.
교통개발연구원 이창운 연구위원은 “단순히 1, 2년 연습한다고 해서 체계가 잡히는 것이 아닌 만큼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상 매뉴얼이 부실하다는 지적에 따라 각 지하철공사는 매뉴얼을 보완하고 있지만 건설교통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지하철 표준안전지침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
또 운전 전력 신호 통신 등 분야별로 분산돼 있던 비상연락시스템도 일원화해야 하지만 대구지하철의 경우 계획만 세워놓았을 뿐이다.
▽인력 문제=인력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제외하면 모든 지하철이 1명의 기관사로 전동차를 운행하는 ‘1인승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전동차가 자동운행시스템에 따라 운행되기 때문.
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 기관사 1명이 승객 1000∼1500명의 안전을 책임지기는 역부족이다. 인천지하철은 2인승무제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대구지하철 관계자는 “2인승무제로 할 경우 자동시스템 설비를 낭비해야 하고 지금의 자동화 설비를 뜯어고쳐야 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며 1인 승무제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역사 관리인력 부족도 개선할 점. 서울지하철의 경우 역당 평균 5명이 근무해 지난해와 달라진 것이 없다. 역장과 사무원을 빼면 3명이 매표 및 시설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형편. 공익근무요원을 추가 배치했지만 그것도 역당 1명꼴에 불과하다.
위탁운영 중인 인천지하철의 임학 동수 선학역은 더욱 심각하다. 다른 역이 3명 3개조로 근무하는 반면 이곳은 2명 3개조로 일하고 있다. 위탁 직원들의 이직률(65%)이 높다 보니 재난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산 부족=서울지하철이 지난해 각종 안전대책에 투자한 돈은 964억원. 올해도 1∼4호선에 528억원, 5∼8호선에 774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이 정도의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서울지하철공사(1∼4호선)는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받은 112건의 안전대책 사업비가 2007년까지 1조353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자체적인 안전대책까지 포함하면 예산소요액은 총 2조5625억원. 그러나 정부가 지원해 준 돈은 내장재 교체비용 1918억원뿐이다.
지하철공사측은 “공사만의 노력으론 불가능하다”며 “돈이 없으면 모든 안전대책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사정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 부산 대구 인천지하철 관계자들 모두 안전대책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며 예산 부족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광주=김 권기자 goqud@donga.com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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