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모씨(여)는 1970년 은행에서 퇴직하면서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65평짜리 자투리땅을 사 아버지 명의로 등기했다. 아버지는 1973년 땅을 둘째 사위에게 판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이전등기했으나 은씨는 이를 모른 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1982년 5월 아버지가 사망하면서부터. 둘째 딸 부부는 1984년 초 “땅을 관리하기 힘들어 처분했다”며 땅값으로 1000만원을 어머니 송모씨(81)에게 줬지만 실제로는 땅을 팔지 않고 갖고 있었다.
이후 강남에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1988년에 땅값이 3억1000만원으로 치솟았다. 1988년 귀국한 은씨는 금싸라기로 변한 땅이 둘째 명의로 돼 있다는 사실을 안 후 셋째인 남동생과 의논 끝에 어머니가 받은 1000만원과 토지를 관리해준 대가 1000만원 등 2000만원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땅을 되찾았다.
땅 문제가 정리된 은씨는 남동생에게 땅을 명의신탁하면서 관리를 맡기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동생이 이 땅을 은씨 몰래 팔아 16억7000여만원을 챙겼다.
은씨는 남동생을 상대로 소유권 확인 소송을 내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남동생은 “법정에서 어머니가 ‘땅 주인은 은씨’라고 말한 것은 위증이며 이에 대해 어머니는 약식명령으로 벌금을 냈다”며 재심을 신청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동생이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를 금지한 형사소송법을 피해 처제에게 어머니를 위증죄로 고소하게 시킨 뒤 어머니 몰래 약식명령을 송달받고 대신 벌금을 내 어머니도 모르는 사이 어머니를 ‘전과자’로 만든 것.
서울고법 민사18부는 남동생이 제기한 재심 청구에 대해 “물정을 잘 모르는 어머니를 속인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며 “어머니가 위증으로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는 어머니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므로 재심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판결 확정으로 은씨는 남동생에게서 땅값 16억7000여만원을 돌려받게 됐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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