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사진전이 열린 한 화랑 2층 안내데스크 모니터에 작품 도난 방지용 CCTV 카메라가 찍은 12개의 화면이 나타났다. 출입문 외벽에서 출입구를 감시하는 카메라에 연결된 화면에는 앞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화랑안 관람객뿐 아니라 거리의 행인까지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모습은 당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게 보인다. 정부나 국가 기관만이 아니다. 기업도 자영업자도, 심지어 개인도 불특정 다수를 지켜보는 ‘눈’을 갖고 있다. 당신을 보는 ‘눈’은 일상에 편재(遍在·ubiquitous)한다.》
●일상 속의 CCTV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김준호(30·회사원) 박현선씨(29·프리랜서 편집디자이너) 부부. 위크엔드는 12일과 13일 이틀간 동행하며 이들이 CCTV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알아봤다.
12일 오후 3시. 강남구청은 지난해 역삼동 일대 16곳에 방범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아내 박씨는 인근 LG강남타워로 가는 골목 사거리에 설치된 카메라 아래를 지나갔다. LG강남타워 주차장 부근에는 CCTV 카메라 2대가 4m 높이 기둥에 붙어있다. 이 빌딩과 연결된 지하도를 따라 건너편 스타타워 식당가로 들어갔다. 베트남 음식점과 일식집 사이 복도 천장에 달린 돔형 카메라 아래를 지나쳤다.
길을 건너 한미은행 역삼동 지점 현금인출기 앞. 천장에서 삐져나온 카메라가 있다. 음료수를 사러 내려간 상록회관 지하 슈퍼 계산대 위에도, 친구에게 축전을 보낸 같은 건물 2층 우체국 창구 맞은편에도 어김없이 카메라는 있다.
저녁 예배를 위해 222번 시내버스에 올라타니 운전석 왼쪽 위 천장에 달린 카메라가 교통카드를 대는 박씨를 녹화한다. 도착한 소망교회 기도실 출입문 위에 돔형 카메라가 있다. 2시간 동안 박씨는 8번 CCTV에 노출됐다.
13일. 출근길에 남편 김씨는 집 근처 KT 전화국을 지난다. 전화국 건물 담 끝 철제 기둥에 카메라가 있다. 선릉로의 한 4거리 횡단보도에 구청이 설치한 주차단속 카메라가 있다.
선릉역 부근 회사 로비에 들어설 때 천장에 달린 돔형 카메라를 주시한다. 오전에 중구 장충동 모 광고대행사 방문. 빌딩 주차장 벽에 카메라가 달려 있다. 점심은 회사 근처 포스코빌딩 지하 아케이드 ‘클럽 Q’에서 먹었다. 식당 밖 천장에 돔형 카메라가 있다. 산책 삼아 들른 코엑스 몰 곳곳의 돔형 카메라. 돌아오는 길에 들른 편의점 계산대 위에서 카메라가 내려다본다. 김씨의 모습은 이날 CCTV 카메라에 최소 7차례 이상 포착됐다.
이들 부부는 “평소 주위에 내 모습을 포착하는 카메라가 이렇게나 많은지 의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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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CCTV
“매년 혹은 2년마다 감시카메라의 크기는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면 정밀성과 움직임 그리고 설치되는 수는 2배씩 늘어난다.” (‘투명사회’의 저자 데이비드 브린.)
광학기술의 발전으로 렌즈의 지름은 밀리미터 단위까지 내려갔고 부품의 크기도 작아졌다. ‘내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소’라고 말하는 듯 크게 드러나던 기존의 CCTV 카메라들이 조명등이나 비상등처럼 돔형의 조그만 보호막 속으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카메라는 360도 또는 540도까지 회전하거나 아래위로 움직여져 촬영 범위를 넓혔다.
또 컴퓨터의 발달로 VCR에 테이프로 녹화하던 방식에서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로 탈바꿈했다. DVR은 모니터를 CCTV 수만큼 분할해서 볼 수 있고 카메라의 방향조절과 주밍(zooming)이 가능하다. 100여m 떨어진 곳의 자동차 번호판도 줌인을 하면 뚜렷하게 볼 수 있을 정도의 정밀성도 갖췄다.
여기에 CCTV의 가격이 떨어지고 안전에 대한 현대인의 욕구는 커져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서울과 부산 인천 등 6개 광역시 경찰청이 운영하는 1178대, 서울의 종로, 관악, 강남구청이 운영하는 107대가 얼른 눈에 띈다. 강남구청은 4월경 구 전역에 방범 CCTV 300여대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설치한 감시카메라는 극히 일부다. 기업빌딩과 학교, 지하철, 찜질방, 편의점, 술집, 주택 등에 설치된 것까지 감안한다면 수십만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2600만대이며 미국에만 1100만대라고 미국 MIT대의 공학전문지 ‘테크놀로지 리뷰’(2003년 4월호)가 보도했다. 뉴욕의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1999년 뉴욕 맨해튼 지역의 감시카메라를 2397대로 집계했지만 9.11 테러 참사를 겪고 난 지난해 3배(7200대)나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에서는 이미 아일랜드공화군(IRA)의 도심테러에 부심하던 1980년대 집중적으로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현재 150만대가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5만대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런던에서 시민들은 하루 평균 5분에 한번씩, 하루 300번 정도 감시카메라에 노출된다는 보고서(영국 헐 대학 범죄학자 클라이브 노리스)도 나와 있다.
●안전, 그리고 또다른 위험
박현선씨는 “어디에 CCTV가 설치돼 있는지 알고 있다면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CCTV가 주민의 안전을 위해 설치돼 있고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면 그 정도는 용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강남구청이 지난해 방범용 CCTV 설치를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메일 여론조사를 한 결과 88.7%가 설치에 찬성했다는 것도 비슷한 심리다.
분명 모든 피사체가 자발적으로 감시의 우산 아래 들어갔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개인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것이고 자발적인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CCTV의 감시사회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예측한 빅 브라더의 감시사회와는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감시 도구든 설치할 때의 목적은 잊혀지고 다른 목적에 쓰이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1997년 워싱턴DC의 고위 경찰관이 동성애자 술집 주차장에 세워진 차 번호판을 CCTV로 파악해 결혼한 차주를 협박했다. 영국의 CCTV 관리요원을 조사한 결과 백인에 비해 흑인들이 1.5배∼2.5배 가량 더 요주 인물로 감시당했다. 미시간주의 한 경찰관은 별거한 부인을 찾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역삼동 관할 경찰지구대에서 CCTV 모니터를 관리하는 한 경찰관은 “앞으로 CCTV 종합관제센터가 생기면 공익근무요원이 모니터를 관찰한다고 하는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CCTV 설치 및 운용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녹화된 화면을 보존하는 기간도 CCTV의 용도와 단체별, 지역별로 1주일에서 5년까지 크게 다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보존하는지의 규정도 없다. 따라서 악용했을 때 처벌규정도 없다.
지난해 경북 모 대학교에서는 지갑 도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은행 CCTV의 작동시간이 잘못 된 것을 모르고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해 수배전단을 붙여 인권 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종로구청은 인사동에 설치한 주차단속 CCTV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생중계해 행인들의 항의를 받고서야 삭제하는 작은 소동을 빚기도 했다.
당신도 감시사회의 안전, 또는 그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글=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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