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비슷한 일에 절반 임금 “우린 뭔가요”

  • 입력 2004년 2월 19일 20시 00분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한발짝 물러서 양보해야만 이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한발짝 물러서 양보해야만 이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근로복지공단 경남 지역 A지사의 경력 3년차 비정규직원 B씨(30). 그는 매주 44시간 정규직과 똑같이 산재보험료를 징수하지만 임금은 비슷한 연차 정규직의 60%(연봉 1500만원)다. 가족수당 출퇴근보조비 효도휴가비 등 각종 수당도 받지 못한다. 지난해 10월 근로복지공단 이용석씨에 이어 최근 울산 현대중공업 퇴직 근로자 박일수씨가 분신자살한 것을 계기로 이 같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문제가 올해 노사 관계의 태풍의 눈이 되어가고 있다.》

▽비정규직 실태=정부는 전체 근로자 1430만명의 32%인 460만명(2003년 8월 현재)이 비정규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노동계는 760만명(53%)이 넘을 것으로 본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의 절반 안팎이다. 비정규직은 1주일∼2년 단위로 재계약하거나 하청업체 직원 신분으로 원청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조원은 7만명으로 노조 조직률이 1%에도 못 미친다.

▽무엇이 문제인가=비정규직 규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데다 임금 등 근로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비정규직은 생계유지도 어려울 정도의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비정규직은 공공기관에까지 널리 퍼져 있다.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임금이 낮고 경기상황에 따라 해고하기 쉬운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다보니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유연성의 문제인 셈.

정부는 지난해 두 차례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하고도 파장을 우려해 결과 발표조차 못하고 있다.

▽노조도 외면=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비정규직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시큰둥하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800명이 정규직 노조에 가입하려다가 거절당했다. 최근 민주노총은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 노조와 함께 분신자살한 박씨 사건에 대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지만 현대중공업 노조는 별도 대책위를 만들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정규직이 그들의 ‘파이’를 비정규직과 나누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노동부 공무원 직장협의회는 지난해 10월 비정규직 직업상담원들이 임금 8% 인상안에 노동부와 합의하자 “박탈감을 느낀다”면서 서울노동청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경영자총연합회 관계자는 “노조가 양보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 차별 해소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도적 미비=법적 보호 장치가 취약한 것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기간제’에 대해선 근로기준법 23조에 ‘계약기간을 명시하지 않으면 1년을 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파견제’는 ‘파견제근로자 보호법’이 있지만 사용주와 파견주간의 종속적 하청관계 때문에 근로감독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비정규직은 노동 3권을 보장받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기도 쉽지 않다. 사업주는 근로자나 하청업체에 대해 ‘계약 파기’라는 수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없나=8일 노사정위원회는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에서 “임금 등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않고, 정규직 채용시 비정규직을 우선 뽑고, 노조는 비정규직을 배려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한다”고 합의해 해결의 물꼬를 텄다.

김진억 민주노총 비정규사업국장은 “파견근로자에 대해 사용자의 책임을 묻고 불법 파견근로에 대한 행정조치를 강화하라”고 말했다. 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와 중소기업의 근로조건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계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노동부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을 올해 안에 제정하고 근로자파견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고 노조가 임금 안정에 협조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 격차 문제는 해소하기 힘들다”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임금 인상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노조가 비정규직 임금 격차 해소문제를 스스로는 양보하지 않고 사용자에게만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 격차 해소는 노조가 임금을 일정 부분 양보하는 대신 사업주도 일정 부분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비정규직 임금을 끌어올리는 방법 등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외국 비정규직: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은 비정규직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비정규직 남용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갖고 있다.

독일에서는 ‘기간제’ 계약을 3회까지만 갱신할 수 있고 그것도 최대 2년을 못 넘는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한다.

‘파견근로제’의 경우 프랑스는 기간을 최대 2년으로 설정했다. 불법 파견근로는 사용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 한국은 26개 업종에만 이를 허용하고 있지만 독일 일본은 일부 업종만 제외하고 모두 허용하고 있다.

‘특수형태 근로제’의 경우 독일은 ‘유사근로자’ 개념을 도입해 연차휴가 휴일 단체협약 등의 혜택을 준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비정규직 용어풀이▼

▽기간제=계약기간이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등 구체적으로 명시된 계약 형태. 비정규직 가운데 가장 많다.

▽파견제=고용주와 사용주가 다르다. 간접 고용 근로자라고도 한다. 최대 2년 계약이 가능하다. 파견, 하청, 용역, 근로자공급 노동자 등으로 나눠진다.

▽단시간제=법정근로시간(주당 40∼44시간)에 못 미치는, 주당 35시간 미만으로 시간별 근로계약을 하는 형태. 임금도 시간당으로 계산된다.

▽특수형태제=근로자인지 자영업자인지 불분명해 법적으로 논란이 많은 직종. 학습지 교사, 보험 모집인, 골프장 도우미, 레미콘 기사 등.

▼이호근 노사정위 전문위원▼

“비정규직 관련 특별법을 제정해 불법적이고 비합리적인 차별 조치를 처벌해야 한다.”

이호근(李浩槿·사진)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 담당 전문위원은 19일 “비정규직 차별은 가장 큰 노동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비정규직이 자꾸 늘어나는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전체 근로자의 6%가량인 70만명이 늘었다.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큰 원인이지만 기술과 정보통신의 발전,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력관리 등이 복합적 원인이 됐다. 임금이 싼 비정규직을 쓰려는 건 기업의 생리다.”

―선진국에 비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데….

“파견제근로자 보호법은 도입된 지 13년이 넘었지만 위법으로 처벌받은 사업주는 19명에 불과할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비정규직을 위한 특별법을 속히 제정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공공 부문 상시직에서 2, 3년의 검증을 거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노사는 각각 어떻게 해야 하나.

“대기업 노조의 두 자릿수 임금 인상 요구는 곤란하다. 노조가 비정규직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측은 줄어든 임금 인상분을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개선과 정규직화에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기간제 근로에 대한 노사정위원회 내부의 방안 비교
노동계안경영계안공익안
△합리적 사유(출산 육아 질병 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 계절적 사업, 일시적인 업무 증대)가 있는 경우에 한해 허용△허용기간=업무 성격에 따른 최소기간. 계약기간은 1년, 단 1회 연장 허용해 최대 2년.△2년 초과 고용시 정규직으로 간주△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 규정△기간제 근로자 고용 사유 설정 반대△계약기간은 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명문화 반대△일정 기간 고용 이후 정 규직 간주△차별금지원칙 명문화△근로조건 명시 △통상근로자 전환 노력 의무△계약기간 명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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