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대책은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한 비상수단이지 정상적인 교육정책으로 볼 수 없다. 잘못되면 오히려 개악(改惡)의 결과를 부를 수가 있다. 이번 대책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여러 각도에서 점검해야 할 이유다.
▼97년 위성과외의 교훈 ▼
첫째, ‘TV과외’는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에 한번 시도됐던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사교육비와의 전쟁’이 선포됐고 위성과외방송이 전격 실시됐다. 지금은 국민의 뇌리에서조차 거의 잊혀졌을 정도로 위성과외방송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여건과 입시경쟁은 달라진 게 없다. 한번 실패했던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달리 대안이 없다면 완벽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만반의 대비가 이뤄진다 해도 ‘TV과외’의 효용가치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TV과외’가 공교육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다. 학생들은 수능시험이 출제된다는 TV강의에 주로 집중하게 될 것이고 학교수업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현장 교사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커지고 공교육의 위축은 피할 수 없다. 사교육 대책의 종착점은 공교육 내실화에 있다. 가능하면 공교육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 ‘공교육 살리기’ 작업과 병행하면서 이뤄져야 한다.
셋째, 사교육 대책이 지니는 독단적인 요소다. 우리처럼 정부가 교육현장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나라는 없다. 교육부 폐지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사교육비 문제가 절박하긴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교육당국은 과거 ‘권력’의 자리로 돌아가 각종 ‘지시사항’을 쏟아냈다.
가령 ‘입시를 내신 중심으로 치르겠다’ ‘수능 비중을 줄이겠다’는 교육당국의 말은 분명한 월권이다. 대학이 어떤 학생을 어떤 방식으로 뽑느냐는 대학의 고유 권한이다. 입시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 싶은 욕구는 대학쪽이 더 강렬하다. 정부는 그 과정에 부정과 비리 등 문제가 없는지 감시자 역할만 하면 된다. 교육 일선에서 자율과 개방의 원칙만 제대로 지켜지면 교육 위기는 크게 호전될 수 있다. 이번 대책에서도 정부는 측면지원체제를 갖추는 데 만족해야 하며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넷째, 사교육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사교육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국민은 짜증과 분노를 느낄 지경이 됐다. 과외비 부담으로 고통을 겪어 본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써도 좋으니까 사교육비 문제를 한번이라도 시원스레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정부가 극단적인 정책을 펴면 국민의 인기를 쉽게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공교육은 그 변화에 걸맞은 교육내용을 수요자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공교육 수준이 낮은 곳에선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영어와 컴퓨터 같은 경쟁사회의 ‘필수무기’를 공교육이 철저히 가르쳐 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모자라는 부분은 사교육을 통해 각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넘겨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사교육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시과외에 대한 규제도 고액과외를 막는 정도에 그쳐야 하며 민주사회의 꽃인 개인의 발전 욕망과 성취동기까지 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TV과외’의 효과는 고작 한두 해 지속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 사이에 정부는 약간의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하다. 교육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교사의 질을 높이고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등 공교육 내실화에 매진해야 한다. 교육정책도 과감하게 자율과 개방의 방향으로 선회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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