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N동 R호텔 건너편 다세대 주택가.
예전 같으면 강남의 고급 룸살롱으로 출근하는 젊은 여성들을 태우기 위해 모범택시들이 골목마다 줄지어 대기하고 있을 시간. 하지만 텅 빈 골목길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2년째 이곳을 자주 오간다는 모범택시 운전사 최모씨(53)는 “이런 일은 처음이다. 한 명도 못 태우는 날이 많다. 지난해만 해도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이 부근 도로가 꽉 막혀서 다니기도 힘들었는데…”라고 말했다.
룸살롱 업계에 몰아닥친 한파가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최근 몇 년간 많게는 월 10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젊은 여성들 덕분에 이 동네 미장원 옷가게 세탁소 점집 등은 이들이 퇴근하는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월세 100만원에도 방 한 칸 구하기 어려웠다.
미용실 주인 김모씨(36·여)는 “아가씨들이 가게에 나갈 때마다 기본으로 미장원비, 콜택시비, 사우나비 등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씩 쓰는데 요즘에는 아예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우리까지 죽을 지경”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그는 “전화요금을 못 내 전화가 끊기거나 일수 돈 때문에 야반도주하는 아가씨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동네 미장원의 30% 정도가 매물로 나왔으며 세탁소 옷가게 등도 비슷하다.
그 진원지는 물론 룸살롱이다. 역삼동 A 룸살롱 주인 김모씨(45)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매상이 3000만원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1000만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강남 일대의 8000여개 유흥업소 중 1000여곳이 매물로 나왔을 정도.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정상적인 향락 접대문화의 퇴조가 근본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만우(李晩雨)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접대비실명제 등 여러 요인에 술자리가 경량화되는 추세까지 겹치면서 접대문화 자체가 바뀌고 있다”며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룸살롱 접대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LG투자증권 박진(朴進)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이 세제 혜택도 받고 건전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공연이나 해외세미나에 초대하는 ‘문화접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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