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비 실명제…불경기…강남술집 주변 “봄이 안오네요”

  • 입력 2004년 2월 20일 18시 54분


《‘불황의 무풍지대’였던 서울 강남의 고급 룸살롱 업계에 한파가 몰아치면서 이 지역 미장원 옷가게 등 관련 업종의 경기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기불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접대비실명제 실시와 접대문화의 변화 등에 따라 ‘룸살롱’으로 대변되는 향락문화의 거품이 빠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9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N동 R호텔 건너편 다세대 주택가.

예전 같으면 강남의 고급 룸살롱으로 출근하는 젊은 여성들을 태우기 위해 모범택시들이 골목마다 줄지어 대기하고 있을 시간. 하지만 텅 빈 골목길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2년째 이곳을 자주 오간다는 모범택시 운전사 최모씨(53)는 “이런 일은 처음이다. 한 명도 못 태우는 날이 많다. 지난해만 해도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이 부근 도로가 꽉 막혀서 다니기도 힘들었는데…”라고 말했다.

룸살롱 업계에 몰아닥친 한파가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최근 몇 년간 많게는 월 10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젊은 여성들 덕분에 이 동네 미장원 옷가게 세탁소 점집 등은 이들이 퇴근하는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월세 100만원에도 방 한 칸 구하기 어려웠다.

미용실 주인 김모씨(36·여)는 “아가씨들이 가게에 나갈 때마다 기본으로 미장원비, 콜택시비, 사우나비 등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씩 쓰는데 요즘에는 아예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우리까지 죽을 지경”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그는 “전화요금을 못 내 전화가 끊기거나 일수 돈 때문에 야반도주하는 아가씨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동네 미장원의 30% 정도가 매물로 나왔으며 세탁소 옷가게 등도 비슷하다.

그 진원지는 물론 룸살롱이다. 역삼동 A 룸살롱 주인 김모씨(45)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매상이 3000만원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1000만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강남 일대의 8000여개 유흥업소 중 1000여곳이 매물로 나왔을 정도.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정상적인 향락 접대문화의 퇴조가 근본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만우(李晩雨)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접대비실명제 등 여러 요인에 술자리가 경량화되는 추세까지 겹치면서 접대문화 자체가 바뀌고 있다”며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룸살롱 접대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LG투자증권 박진(朴進)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이 세제 혜택도 받고 건전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공연이나 해외세미나에 초대하는 ‘문화접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