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高生 ‘中古 교복’ 구하라

  • 입력 2004년 2월 23일 14시 53분


"우리 아이 교복을 못 구했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23일 오전 서울 강북 지역의 한 중학교 교무실. 한 학부모가 애타는 목소리로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 학부모는 "아들이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인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새 교복을 사기가 어렵다. 졸업을 앞둔 선배들이 남긴 중고(中古) 교복을 구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전화를 받은 교사 김모씨(44)는 "중고 교복을 구하는 전화가 하루에 두, 세통씩 걸려오는데 남는 교복이 없어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지 올해 유난히 교복을 구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고교 입학을 앞두고 알뜰 학부모들이 중고 교복을 구하기 위해 아우성이다. 교복을 제대로 갖추려면 수십만원이 드는 반면 중고 교복은 2만원이 채 안 돼 몇 푼이 아쉬운 학부모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신입생뿐 아니라 재학생도 마찬가지. 중고교생 대부분 키가 쑥쑥 자라는 청소년들이어서 1년 단위로 새 교복을 사야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기 때문.

중고 교복이 인기를 끌면서 각 학교나 구청 등이 마련한 알뜰장터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서울 O중에 다니는 신모군(14)은 "부모님께 알뜰장터에서 교복을 사겠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셨다"며 "알뜰장터에서 3대 1쯤 되는 '대단한' 경쟁을 뚫고 겨우 교복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새 교복을 파는 업자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 교복 판매업체 사장은 "지난해에 비해 교복 매출이 40%나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학생들이 대부분 중고 교복을 구하고 있더라"며 "교복은 의무적으로 입어야 하는 옷이어서 경기를 안 타는 줄 알았는데 중고 교복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당장 필요한 학용품도 비슷한 실정.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학부모들은 상태가 좋은 중고 학용품을 싼 값에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터넷 벼룩시장에 초중고 시절 쓰던 학용품 20여가지를 '재미삼아' 내놨던 김모씨(25·여)는 쏟아지는 문의전화에 깜짝 놀랐다. 김씨는 "이렇게 전화가 빗발칠 줄 몰랐다"며 "물건을 내놓은 지 얼마 안 돼 다 팔렸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주부 정모씨(32)는 "요즘 생활정보지에서 학용품 매물 찾는 게 일"이라며 "판매자에게 전화를 해보면 이미 팔리고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창신동 천호동 등에 형성된 학용품 도매상가들은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절반 가량 줄었다"고 호소했다.

20일 '교복 및 학용품 알뜰장터'를 연 양천구청 관계자는 "중고 교복이나 학용품을 구하려고 1000명이 넘게 몰려들었지만 나온 물건이 턱없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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