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高校 배정 묘수없나…학교 평준화이후 해마다 논란 되풀이

  • 입력 2004년 2월 23일 18시 35분


《신학기를 앞두고 수도권 곳곳에서 중고교 배정 결과에 반발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교육당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학부모들이 무더기로 자녀의 입학 등록을 거부해 자칫 학생들의 진학이 불가능해지는 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교육당국은 현행 ‘선(先)지원 후(後)추첨’ 배정제도 아래서는 극소수가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학부모들은 “왜 하필 우리가 희생당해야 하느냐”며 교육당국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런 현상은 평준화제도로 인해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제한되는 데 따른 후유증으로 현 제도를 유지하는 한 해결 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잇따른 재배정 요구=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충훈고(신설학교)는 이 학교 배정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발로 등록시한을 22일까지 몇 차례 연기했으나 결국 152명의 학생이 등록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검정고시를 치르거나 유학을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통학과 교육여건이 나쁜 학교에는 보낼 수 없다며 전면 재배정이나 ‘선등록 후전학’을 요구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23일 경기도청에서 항의 집회를 가진 데 이어 24, 25일 교육인적자원부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한편 청와대와 국회 등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은 “25일까지 공사를 마무리하고 26일 학교를 공개하겠다”며 “26일까지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구제방법은 없다”고 못박았다.

안양시를 포함한 경기지역 5대 신도시는 2002년 고교평준화가 도입된 이후 해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찌감치 평준화가 정착된 서울과 인천에서도 재배정 요구가 쇄도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과 강남구 삼성동의 학부모 70여명은 16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고교 재배정을 요구하며 항의 농성을 벌였다. 이날 목동 A중학교 학부모들은 “진학을 꺼리는 특정 고교에 절반 가까운 학생이 배정됐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인천 연수구의 학부모들도 7일 고교 배정 이후 “집 앞의 연수고를 놔두고 1시간가량 걸리는 중구 소재 고교에 배정됐다”며 인천시교육청에 항의했다. 경기 부천시 상동신도시 백송마을과 하얀마을 아파트단지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단지 내 상일중학교가 아닌 0.8∼1.5km 떨어진 상동중학교(신설학교)로 배정되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발하고 있다.

▽누구 잘못인가=학부모들의 불만은 교육청이 근거리 배정 원칙을 무시하고 먼 거리나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교에 학생들을 배정했다는 데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인천과 경기 부천지역의 경우 택지개발이 끝나 주민들이 입주했는데도 학교 신설이 늦어지거나 당초부터 교육수요 조사를 잘못해 먼 거리 학교에 배정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은 “고교평준화 5개 지역의 1지망 배정비율은 평균 75.5%이며 마지막 순위 학교에 배정된 비율은 1.7%에 불과하다”며 “현행 제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순혜(金順惠) 경원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행 평준화제도를 유지하는 한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교육당국이 신설학교나 먼거리 학교의 시설 및 환경, 교통여건을 개선한다면 학부모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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