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서 청량리로 "한끼 해결" 원정…무료급식소 인파 급증

  • 입력 2004년 2월 24일 18시 46분


경기 안양시에 사는 91세 노인 신모씨(여)는 매일 아침 서울로 오느라 일찍부터 서두른다. 나이 탓에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려운 살림살이여서 한 끼라도 공짜로 해결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방배동 ‘까리따스 종합사회복지관’을 찾는다.

신씨는 23일 “안양의 급식소는 새벽에 가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서울로 오는 것”이라며 “최근엔 여기도 경쟁이 치열해 일찍 와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급식소를 운영하는 콘스탄티노 수녀(37)도 “지난해 말부터 사람들이 갑자기 늘었다”면서 “서울은 물론이고 인천이나 경기도에서 오는 사람도 많다”며 놀라워했다.

24일 오전 10시경 서울 동대문구 지하철1호선 청량리역 근처.

행색이 초라한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무더기로 내린 뒤 빠른 걸음으로 인근의 무료급식시설인 다일복지재단으로 향했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김모씨(78)는 “여기까지 오는 데 2시간 정도 걸리지만 부천지역은 경쟁이 치열해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재단을 운영하는 최성욱 본부장(38)은 “지난해 말까지 하루에 350명 정도가 밥을 먹었는데 지금은 700명도 넘는다”면서 “다른 곳들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이처럼 무료급식소(경로식당)를 찾는 영세민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서울 경기지역의 경우 올겨울 많게는 2배 이상 늘어난 곳도 있다.

특히 경기지역에서 서울까지 식사를 해결하러 오는 영세민의 수는 심각할 정도.

현재 경기도의 무료급식소는 총 81곳으로 하루 3401명분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서울(8860명분)의 38% 수준. 이미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경기도 인구(약 1036만명)가 서울(약 1027만명)을 앞지른 것을 고려하면 형편없이 낮은 수치다.

여기에 경기 서부지방 무료급식의 한 축을 지탱하던 인천의 무료급식소가 최근 연달아 문을 닫으며 인천 영세민과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하던 인근 경기도민들까지 서울로 몰려들고 있다. 인천은 지난해부터 7개의 무료급식소가 폐쇄됐고 다른 곳들도 재정난 등을 이유로 제공하는 음식량을 줄였다.

이 때문에 급식량이 한정돼 있는 서울의 무료급식소들은 이들을 막을 수도, 다 받을 수도 없어 발만 구르고 있다.

서울시 이봉화(李鳳和) 복지여성국장은 “서울의 126개 무료급식소를 찾는 영세민들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라며 “당장 대책을 세워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동덕여대 남기철(南基澈·가정복지학) 교수는 “무료급식을 원하는 사람은 늘고 있는데 전국적인 무료급식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태”라며 “대부분 민간 주체로 운영되는 무료급식을 정부가 책임지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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