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대선 당시 2억원을 중앙당에서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날은 2002년 경선 당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십수억원을 썼다는 발언이 나온 다음 날인 데다 한나라당이 박 의원을 중심으로 수습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던 시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박 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검찰이 밝혀냈다’는 설이 며칠 전부터 나돌았다.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검찰이 수사내용을 흘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박 의원의 경우 불법 자금 모금과 유용에 관여하지 않아 기소를 전제로 소환할 인물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검찰은 노 대통령의 정치특보인 열린우리당 김원기(金元基) 의원이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관여한 단서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박 의원의 금품 수수 보도로 코너에 몰린 검찰이 노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김 의원의 불법 모금 단서를 꺼내면서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검찰이 이날 발표한 노 캠프와 한나라당의 지구당 지원금도 순수성을 의심받은 대목. 한나라당이 지구당과 시도지부에 지원했다는 410억원과 노 캠프가 지원한 42억5000만원은 거의 10 대 1이다. 이 역시 “나의 불법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정계은퇴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의식하고 여야의 입지를 동시에 고려해 적절한 비율을 맞춘 결과가 아니냐는 것.
이에 앞서 검찰은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의 경선자금 수수에 대한 ‘편파 수사’ 시비가 일고 있던 1일 노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安熙正)씨가 경선자금 명목으로 대우건설에서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발표하는 등 몇 가지 사안과 관련해 야당으로부터 ‘여론 물타기’라는 지적을 받아왔다.▶표 참조
이에 대해 수사팀 관계자들은 “박 의원이나 김 의원의 경우 수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을 언론에서 먼저 보도했기 때문에 검찰이 내용을 확인해준 것일 뿐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다 보니 관련 의혹이 조금씩 규명되는 것”이라며 “정치적 목적에서 발표 시기를 조율해 무슨 ‘카드’를 꺼낸다는 것은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대선자금 수사 의도가 순수하더라도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나오는 수사 결과가 상당한 파장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므로 조속한 시일 안에 수사 결과를 일괄적으로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민주당 등이 주장한 검찰의 물타기 의혹 사례 | 시점 | 검찰의 수사(또는 발표) | 정치 상황 |
2003년 11월 7일 | 최도술씨에게 거액 건넨 김성철 부산 국제토건회장 사무실 압수수색 | 11월 8일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법안 국회 법사위 통과 |
11월 10일 | 양길승씨와 청주 나이트클럽 실소유주(이원호씨)간 추가 접촉사실 공개 | 국회 본회의에서 측근비리 특검법안 통과 |
11월 25일 | 최도술씨에게 돈 건넨 강병중 전 부산상의 회장 소환 | 노 대통령이 측근비리 특검법 거부권 행사 |
12월 4일 | 노 대통령의 후원자 강금원씨 조세포탈혐의로 구속. 문병욱 회장 구속 |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법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결 |
2004년 2월 1일 | 노 대통령 최측근 안희정씨가 불법 경선자금 5000만원 수수 사실 발표 | 1월 31일 한화갑 의원의 불법 경선자금 수수 사실 확인에 따라 민주당이 노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 경선자금 검찰 고발 |
2월 25일 | 김원기 의원 불법 모금 단서 발표. 박근혜 의원 정치자금 수수 확인 | 한나라당 내분 수습 국면, 정치권 총선 체제 정비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