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조영식/40대 치과의사의 ‘인생 후반전’

  • 입력 2004년 2월 25일 19시 17분


책 읽고 TV를 보는 일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때 눈은 친절한 생체시계가 되었다. 안경사는 독서용 안경을 권하며 눈을 많이 쓰는 직업은 노안이 일찍 온다는 위로성 ‘멘트’를 잊지 않았다. 내가 틀니가 필요한 환자에게 단지 어금니가 없어서 그렇지 연세와는 상관없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한 친구는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는 제목의 시를 썼다. 그때 우리는 20년이 지나면 40대가 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중견 치과의사가 되었고 40대 중반이 됐다.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듯 봄날은 가는 것이고 개업의 생활 또한 반환점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40대가 되면 치과의사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분명해진다. 몇몇이 의기투합해 치과병원을 세우는 멋진 계획을 실천하기도 하고 고급스러운 취미생활을 위해 주말을 기다리기도 한다. 중앙아시아로 의료봉사를 가거나 각종 총회의 주요 인사가 되기도 한다. 아니면 원장실의 평화를 굳게 지키며 곱게 늙어가든지…. 아무튼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다.

개원 초기 보건대학원에 다니며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학점이 된다는 게 너무도 신기해 ‘보건학을 하는 치과의사’가 되기로 했다. 강의도 하고 책도 썼다. 구강보건정책에 관해 발언도 하고 일도 하면서 작은 보람과 더 큰 무력감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활동이었고 평일 낮 시간에 병원 밖에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인문학적 시선과 사회적 맥락에서 ‘치의학 자체’보다는 ‘치의학의 제반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선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신설학과의 교수직을 선택한 이유다.

주변의 반응은 ‘잘했다’는 격려도 있었지만 ‘왜 힘들게 사니’라는 걱정과 ‘취미삼아 택했느냐’는 평가절하도 많았다. 요즘 대학이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고 한가하게 지낼 만큼 간단한 나이도 아니라는 것.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꿈꾸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100년 전 미국에서도 그랬다. 예방의 가치에 눈뜬 치과의사들이 폰즈 박사의 마구간에 모여 교육을 시작했고 27명의 졸업생들은 학교에 배치돼 구강보건 활동을 했다. 아동들의 충치를 75%나 감소시킨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전국으로 확산됐고 치과위생사 제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한 세기가 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구강보건법이 만들어지고 초등학교와 특수학교에 구강보건실이 늘어나고 있지만 곳곳에서 난관에 부닥치고 있다. 이제 구강보건사업은 하드웨어와 시혜 위주에서 사람과 시스템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몇몇 대학에서 배출하게 될 학사 치과위생사는 훌륭한 ‘구강보건교사’와 ‘공중보건치과위생사’가 될 것이다. 이 미완의 제도가 실현될 때 이 땅의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들은 공중보건의 유산에 대한 부채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두 번째 직업은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전반전 20년이 ‘보건학을 하는 치과의사’였다면 후반전 20년은 ‘치과의사 출신의 보건학자’로서 가르치는 일과 공부하는 일에 집중하며 살고 싶다.

조영식 남서울대 교수·치위생학

:약력:

△1958년생 △연세대 치대 △서울대 보건대학원 △가톨릭대 대학원 보건학 박사 △대한치과의사협회 기획이사 등 역임 △대한구강보건협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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