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 밀집지역인 은마아파트 인근 ‘부동산랜드’에는 ‘학원 있음’ ‘교습소 자리 A급’을 내건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부동산랜드 김석준 사장은 “‘학원 프리미엄’이 따로 있었으니까 2, 3층이라도 월세가 450만원까지 했죠. 요즘은 학원이 안 들어오니까 그냥 사무실로 주고, 그러다 보면 350만원에도 나갑니다. 학원 매물은 계속 쌓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대치동 선경아파트 단지 내 ‘전원부동산’ 윤선기 부장은 “정부의 사교육 대책은 워낙 변화가 심해 이 동네에서는 이미 ‘가격 변수’로 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타워팰리스는 평형에 따라 최근 수억원씩 오른 곳도 있다. 거래는 뜸하지만 급하게 팔려는 사람도 없어 강보합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잇따라 ‘사교육 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최근 강남 일대 학원가는 경기불황까지 겹쳐 거센 구조조정 바람을 맞고 있다. 그러나 강남의 학부모들은 “교육방송(EBS)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며 ‘강남 사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학원 매물 증가=대치동 부동산 업자들에 따르면 은마아파트∼대치역 일대 중소규모 학원 300여개 중 20% 가까이가 매물로 나오거나 매매 의사를 타진 중이다. 대로변 50평형의 경우 지난해 여름까지는 평당 5000만∼6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도 매물이 없었지만 요즘은 시설비 조로 1000만∼2000만원만 붙어있으며, 그나마 사려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
학원들의 불황도 심해지고 있다. H학원 관계자는 “수업시간을 늦은 저녁까지 늘릴 수 없어 수강생들이 예년 이맘 때에 비해 30% 이상 감소했다”며 “사명감을 가진 교육기관들까지 마치 범법집단이나 되는 것처럼 매도하는 실태가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러나 논술 영어 수학 같은 기초과목, 종합생활지도가 가미된 ‘대치동 스타일’ 학원들은 여전히 고공비행 중이다. JLS정상어학원 관계자는 “이미 6월 말까지 수강생이 차 있어 수강희망자는 결원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학원경영컨설팅사 ‘잼퍼스’의 임찬균 대표는 “자체조사 결과 서대문 은평 마포구는 4분의 1이 휴업상태인 정도지만 강남 학원들은 오히려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단순 단과반은 점차 온라인 강의와 차별성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 이미 EBS 교재와 강의 연구반, 집중내신대비반, 소규모·관리형 종합반들로 학원구조가 개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여전히 ‘강남 사수’=학부모 윤모씨(52·강남구 일원동)는 “EBS만 보고 대학 가라는 말은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예전 이해찬 장관의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며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풍조가 높아 일단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보업체들도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의 사교육 대책이 발표된 2월 17일과 25일을 전후로 강남 일대 일반 아파트의 매매나 전세시장에서 ‘의미 있는 변화’는 없다고 분석했다.
부동산컨설팅사 ‘현도컨설팅’ 임달호 대표는 “학부모들이 단지 대입만을 의식해 강남에 오는 것은 아니다”면서 “유해환경이나 학원폭력이 적다는 점도 강남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교육체제에 맞춘 또 다른 학원서비스가 대치동을 중심으로 생겨날 것이며 지금 수준의 사교육 정책이라면 강남 부동산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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