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금융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부터 제출받은 용역보고서를 토대로 마련 중인 신용불량자 종합대책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이 문제를 이대로 안고 갈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두 연구기관은 “신용불량자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정공법(正攻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잠재 신용불량자를 위한 신용회복 지원 강화=금융연구원은 신용회복위원회가 신용불량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해 잠재 신용불량자를 위한 별도의 신용회복 지원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출금 등을 연체한 지 3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신용불량자 문턱에 서 있는 사람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창구가 전혀 없는 것은 큰 문제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신용회복위는 신청자격이 총 채무액이 3억원 이하이고 신용회복위에 가입하지 않은 대부업체 등 ‘비(非)협약 금융회사’에 진 빚이 총 채무의 2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등 제한이 있어 2002년 11월 이후 개인워크아웃 신청자가 8만여 건에 불과하다.
또 신용회복위가 민간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기구여서 강제력이 없다며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KDI는 제안했다.
▽신용불량자 등록제도 폐지=금융연구원과 KDI는 신용불량자를 한꺼번에 사면(赦免)하거나 일부 빚을 탕감해주는 임시방편은 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도 ‘신용불량자 문제는 근본적으로 접근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어 두 연구기관이 제안한 ‘정공법’이 대부분 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연구원과 KDI는 무엇보다도 ‘신용불량자’라는 낙인만 찍히면 사실상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현행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를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30만원 이상의 대출금이나 카드대금, 휴대전화 요금 등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신용불량자’로 분류돼 사실상 금융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 소득과 재산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이유로 대출금을 연체했는지 등 개인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두 연구기관은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금융회사들이 개인의 빚 상환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은행연합회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신용정보를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은행연합회는 현재 각 금융회사로부터 △3개월 이상 연체정보 △대출금 총액 △채무보증 현황 등을 수집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금융회사들이 은행연합회 정보를 이용해 개인의 신용상태를 파악하려면 1개월 이상 연체정보와 함께 과거 대출금 상환실적, 카드대금 납부실적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용불량자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개인채무자 회생법 제정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 법이 통과되면 어느 정도 수입이 있는 신용불량자들은 법원의 승인 아래 일정기간(예를 들어 8년) 빚을 갚고 나면 나머지는 탕감 받을 수도 있다.
▽신용불량자 대책의 효과는 미지수=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같은 대책을 실시한다고 해도 당장 신용불량자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대책 자체가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식은 결국 ‘내수경기 회복→일자리 증가→가계소득 증가→채무상환→신용불량자 감소’의 선순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의 대책만으로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경기회복이 가시화돼야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아무리 신용불량자 문제가 시급하더라도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부추기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금융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의 신용불량자 대책 주요내용 | 대책 | 내용 |
신용불량자 등록제도 조기 폐지 |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막는 획일적인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 |
금융회사간 공유 신용정보 확대 | 신용정보업(CB)을 활성화하고 은행연합회에 집중하는 개인신용정보를 1개월 이상 연체 정보 등으로 확대 |
개인채무자 회생법 조기 제정 | 국회에 계류 중인 통합도산법에 포함된 개인채무자 회생법안을 별도로 조기 제정해 신용불량자의 회생절차 등 간소화 |
신용회복지원제도 강화 | 신용불량자들을 대상으로 개인워크아웃을 실시하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법적 근거를 마련. 3개월 미만 연체자 등 신용회복지원위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별도의 신용회복지원기구 설립 |
신용불량자에 대한 일자리 알선 확대 | 은행 등 금융회사와 신용회복지원위에 일자리 알선을 독려해 신용불량자들의 채무 상환능력을 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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