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선거운동을 단속하는 선관위가 ‘도청(盜聽)’이라는 불법을 저지른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북구 선관위 관계자 3명을 불러 녹음기를 설치한 경위를 조사했다. 이들은 경찰에서 “지구당에서 향응을 제공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녹음기를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선관위가 잘못을 시인했는데도 경찰 수사는 진척을 보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측이 이 사건의 핵심 증거물이라 할 수 있는 녹음기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당시 녹음기를 발견해 가지고 있던 지구당측은 녹음기 제출 거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사건 발생 6일이 지난 2일 오후 경찰에 증거물을 제출했다. 또 경찰의 조사를 계속 미뤄오던 당원들도 이날 출두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녹음기를 증거물로 받아야 하는데 지구당에서 녹음기를 촬영한 사진만 보내왔다”면서 “녹음기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압수수색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해 확보할 방침이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불법 도청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내심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지구당 위원장인 현역의원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선관위의 직무수행 중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경찰에 공식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지구당 관계자도 “당에서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도 아니고 선관위가 이미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에 사건이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솔직히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와 불편한 관계에 놓이면 좋을 게 뭐 있느냐”고 털어놨다.
이번 사건의 수사 진행과정에서 보여준 열린우리당의 행태는 한마디로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꼴’이다. 불법에 대해 과감히 규탄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해야 할 정당이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선관위가 무서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선처 호소’가 선관위에게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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