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개학한 서울 A고 김모 교장은 학부모 대표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들은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서울시교육청의 학교 교육 정상화 추진계획을 학교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할지를 묻기 위해 교장실에 들이닥친 것.
김 교장은 “언론을 통해서 대책을 전해 들었을 뿐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학부모들의 열기에 놀랐다”면서 “매일 교사들과 회의를 갖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고 털어놓았다.
새 학기를 맞아 일선 학교들이 당장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자체적으로 수준별 수업 등을 착실히 준비한 학교는 “본격적으로 수준별 보충수업을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술렁이는 교사들=2일 오전 서울 K고.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교사들이 교무실에 모였다. 교장이 방과 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어떻게 시행할지에 대해 회의를 소집한 것.
“사교육에 치우친 학생들을 다시 학교로 끌어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효과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마련해 봅시다.”(교장)
“보충수업에 사용할 교재도 없는데 무엇으로 수업을 합니까. 정규수업에 특별활동, 담임 업무 등만 해도 벅찬데….”(박모 교사)
정부가 언론에 발표한 자료 하나만 덜렁 던져 놓고서 일선 학교에 모든 걸 떠맡긴다는 교사들의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서울 Y고는 3일 보충수업 시간표를 마련해 학생들에게 참가 여부를 물었지만 강좌당 3, 4명만 신청했을 뿐이다.
이 학교 박모 교감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라며 “시큰둥해하는 교사들에게는 외부 강사라도 초빙해 수업하자고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담임교사들은 개학일에 EBS 시청에 필요한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은 가정을 파악하느라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냈다.
일부 학교는 학생들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 의무적으로 참가하도록 강요하고 있어 참여를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서울 S고 이모 교사는 “교육 당국이 하루빨리 시행 지침과 운영 방법 및 예시 모델 등을 제시하지 않으면 교육 현장의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준비된 학교들=반면 수준별 이동수업과 보충수업을 준비해 온 학교들은 이번 기회에 사교육과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다짐이다.
서울 경복고는 보충수업 시간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역별 과목을 모두 개설하고 학생 수준에 따라 반을 편성해 수업할 예정이다. 보충수업 교사가 부족하면 인근 경기상고 등지에 지원을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홍익표 부장교사(45)는 “참고서를 집필한 교사도 있기 때문에 학교 자체적으로 교재를 만들어 수업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고는 지난해부터 실시한 수준별 보충수업을 보다 강화할 계획이다. 윤동원 교무부장은 “보충수업 강좌를 학년별, 수준별로 50여개 개설해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데 겨울방학 때는 전교생 절반이 신청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고 밝혔다.
서울 동성고도 조만간 과목별로 기초반과 고급반으로 나눠 학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반을 고를 수 있는 보충수업을 할 방침이다.
▽학교간 격차 더 커질 것=교사들은 보충수업과 수준별 수업에 사용할 교재와 운영 프로그램, 비용 및 교사 확보 등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이를 모두 학교에 떠넘기면 실력 있는 교사와 수업 노하우를 갖춘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간에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 K고 김모 교사는 “교사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학생들이 외면할 것이 뻔하고 결국 공교육에 대한 불신만 가중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EBS 수능 강의 시청을 위한 기자재 구입도 시급한 상황이다. 서울 K고 배모 교감은 “방과 후 학생들이 EBS 강의를 선택해서 보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대형TV와 관련 기자재가 없다”고 걱정했다.
▼특별취재팀▼
홍성철 기자(팀장)
이헌진 이완배 손효림 길진균 조이영 정양환 유재동 전지원 기자(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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