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대책후 첫학기]<3>달라지는 EBS 수능강의

《“4월부터 시작되는 교육방송(EBS)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는 기존 EBS 강의와 뭐가 다르지요?”

“EBS 수능 강의만 잘 들으면 정말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EBS 수능 강의를 크게 늘리고 실제 수능 출제 과정에서 이 강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로 함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가 EBS 강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관(官)에서 제공하는 EBS 강의가 온라인 학원 등 사교육의 질적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미심쩍어 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적지 않다. 올해 고교에 진학하는 아들을 둔 학부모 이모씨(41·여)는 “아이와 함께 EBS 방송 강의를 들어봤는데 설명이 부족하고 형식이 지루해 강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며 “강의의 질과 형식을 크게 개선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가르치나=학원 강사와 현직 교사 50명씩 모두 100명으로 강사진을 구성한다. 학원 강사는 1차로 언어영역 이석록씨 등 25명이 선정됐다. 나머지 25명에 대해서는 선발 과정이 진행 중이다. 2월 말 마감한 2차 강사 모집에 115명이 지원해 4.6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EBS 박상호 위성제작팀장은 “외국어 영역의 경우 지원자 29명 가운데 10여명이, 제2외국어 영역의 경우 지원자 전원이 박사학위 소지자”라며 “대학 강사, 해외유학 경험자 등이 많다”고 밝혔다.

EBS는 카메라 테스트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인적자원부, 교원단체, 학부모 등 전문가가 참여한 강사 선발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0일경 학원 강사를 최종 선발할 예정이다.

또 현재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추천받은 현직 교사 가운데 50명을 뽑기 위한 전형이 실시되고 있다.

강사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을 살려 수능 영역별로 과목을 세분화해 1개 과목씩 맡아 강의할 예정이다. 과목당 50분씩 20회 강좌가 진행된다.

▽강의 내용=중급 수준에 맞춰진 기존 강의와 달리 4월 1일부터는 초급, 고급 강의도 개설된다. 중급 강의는 현직 교사가 맡는다. 이 강의는 위성방송을 통해 방영된다. 인터넷으로만 진행되는 초급 및 고급 강의는 학원 강사들이 맡는다. 중급 강의도 인터넷으로 다시 볼 수 있다. 수준별 수업은 고교 3학년생만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고교 1, 2학년생에게는 중급 수준의 강의가 제공된다.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은 초중고급 3단계로 나뉘며 그 이외 영역은 과목당 ‘기본개념’ ‘심화과정’ 등 2단계로 나뉜다.

언어 영역은 현대시 100선, 언어오답 줄이기 등 초급 강좌와 언어 종합, 고급 문학 독해 등 고급 강좌 등으로 세분화된다. 외국어 영역은 초급 과정의 기초영어 독해 기법, 고급 과정의 유형 독해 연습, 수능 영문법 등으로 나뉜다. 수리영역에는 초급을 위한 수리Ⅰ 기출문제 심층 분석과 고급 과정의 미분과 적분, 수리Ⅱ 고급 등의 강의가 개설된다.

고교 1, 2학년 대상 강의는 심화과정 문제 풀이를 강화해 상위권 학생들에게도 유용하게 만들어진다. 위성방송 강의는 과목 진도를 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넷 강의는 중간, 기말 고사를 대비한 전 과목 특강으로 꾸며진다.

▽강의 형식은=기존 EBS 강의는 강사 2명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칠판 대신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는 등 ‘방송’의 측면이 강했다. 앞으로는 교사 1명이 칠판을 사용해 실제 수업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된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일선 학교 보충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는 장면을 담은 강의도 제작할 예정이다. 강사가 풀어주는 실전문제 비율도 50%에서 98%로 크게 늘어난다.

4월에 개설되는 강의는 1일부터 모두 인터넷에 올려진다. 위성방송은 매일 새로운 내용을 담은 9시간가량의 강의를 반복해 방영하며 주말에는 한 주간 방송된 내용이 재방영된다.

EBS는 서버를 확충하는 대로 강사진과 대학원생 등으로 구성된 사이버 상담교사 시스템을 마련해 학생들이 실시간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시설 확충 시급=교육부와 EBS는 첫날 강의에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는 수강생이 10만명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올 수능 응시생만 약 60만명인데다 고교 1, 2학년 학생까지 사이트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첫날부터 서버가 다운되는 등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규모 항의 사태가 예상된다.

각 고교에서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시청할 수 있는 대형 TV 등을 갖추는 데도 만만찮은 예산이 들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동영상 강의의 화질 역시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이디가 ‘sunmi915’인 한 이용자는 EBS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화면이 울렁거려 볼 수가 없다”면서 “이런 방송을 1년간 볼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홍원(金洪遠) 연구위원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EBS를 활용하려면 위성방송, 인터넷 기반 시설 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고교 ‘EBS 효과’▼

대구 영신고는 지방에서 EBS 강의를 적극 활용해 학생들의 실력을 올린 대표적인 경우. 이 학교는 1990년대 중반 이전만 해도 대구시내 20개 인문계 고교 가운데 학력이 최하위였다. 영신고는 1995년부터 보충학습 시간에 EBS 강의를 활용했다. 그 결과 1999년 고교 3년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수능 모의고사에서 전국 인문계 1위를 차지했다.

현재도 이 학교 신입생의 입학 성적은 대구시에서 최하위권이다. 하지만 EBS 강의를 잘 활용해 2004학년도 수능 1등급 이상이 15명, 3등급 이상이 108명이나 돼 대구시 상위권 학교에 들었다. 최근 전국에서 영신고에 EBS 활용 교육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서울에 비해 사교육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에서 EBS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를 제대로 활용하면 수능 점수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BS 강의를 잘 활용하고 있는 대전 충남고는 대전 충청지역 국립대와 서울시내 주요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1999년 62명에서 2001년 112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제주 서귀포여고도 2000년 4월 EBS 강의를 활용하면서 해마다 도내 학력평가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등 학력이 크게 향상됐다.

4월 1일부터 시작될 새로운 EBS 강의는 종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충실하게 꾸며진다. 그러나 방송 강의는 교사의 수업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강의 수강자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내야 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특별취재팀▼

홍성철 기자(팀장)

이헌진 이완배 손효림 길진균 조이영 정양환 유재동 전지원 기자(사회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