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임종윤·林鍾潤)는 K종금이 박모씨를 상대로 “정모씨가 박씨 금융계좌 명의를 빌려 재산을 빼돌렸다”며 낸 위탁계좌 명의변경 청구소송에서 “박씨는 위탁계좌 명의를 정씨로 원상회복시켜라”고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금융실명제의 취지에 비춰 금융자산이라 하더라도 명의대여자 외에 실소유자가 따로 있다는 점이 법원 판결 등에 의해 명백히 밝혀진 경우에는 문제의 금융자산 명의를 원소유자로 변경하는 절차가 허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피고측은 금융실명제법상 금융기관이 명의를 확인한 거래자가 실제 거래 당사자이므로 명의신탁이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명의 자체의 변경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금융실명제의 취지는 명의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보다는 실명거래를 통해 투명성과 조세형평을 제고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K종금은 96년 7월 N반도체에 30억원을 대여하면서 이 회사 대표이사였던 정씨의 연대보증을 받아뒀으나 N사가 경영악화로 98년 7월 화의절차에 들어가는 바람에 2억8000여만원만 변제받았다.
이후 K종금은 정씨가 화의개시 뒤인 98년 10월경 개인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사위인 피고 박씨와 딸, 아들 등의 명의를 빌려 주식을 매수하는 등 금융자산 형태로 명의신탁을 한 사실이 관련 형사재판에서 확인되자 소송을 냈다.
한편 이번 판결을 최근 문제가 됐던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차남 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된 뭉칫돈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판결에 따르면 문제의 돈이 전씨가 재용씨에게 증여한 게 아니라 명의신탁된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명의를 전씨에게로 원상회복시킨 후 전씨가 미납한 추징금 환수에 사용할 수도 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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