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前총재 “함께 책임지자” 盧대통령 정조준

  • 입력 2004년 3월 9일 18시 52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가 9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검찰에 대해 날을 세웠다. 전날(8일) 검찰의 대선자금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도화선이 됐다.

이 전 총재가 검찰 수사발표 직후인 이날을 기자회견 ‘D데이’로 잡은 것은 검찰 수사의 윤곽이 드러난 만큼 수사의 공정성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에서였다는 후문이다.

이 전 총재는 이날 회견에서 먼저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를 거듭 요구하며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밑자락에 깔았다. 하지만 발언의 과녁은 검찰과 노 대통령이었다.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 전 총재가 공개적으로 검찰 수사의 편파성 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스스로 판단하라”는 완곡한 표현을 구사하긴 했지만 노 대통령을 겨냥해 ‘동반 책임론’을 제기한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당시엔 검찰 수사나 노 대통령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 총재의 이날 회견이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것이란 관측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10분의 1’ 발언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 전 총재의 이 같은 요구는 계속 논란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때마침 한나라당이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격론 끝에 대통령 탄핵안 발의를 밀어붙인 것도 이 전 총재의 발언이 던진 파장을 염두에 둔 결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총재가 자신을 던져 ‘한나라당 구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이날 회견 말미에 “이제 국민 여러분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노여움을 푸시고 못난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안타까움으로 채찍과 격려를 보내주시기 바란다”고 말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에 대한 압력 행사용 회견”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도 분위기는 엇갈렸다.

열린우리당 박영선(朴映宣) 대변인은 “개인 유용 혐의에 대해 반성은 않고 검찰수사의 형평성을 물고 늘어지면서 기자회견 자체를 정치화했다”고 비난했으나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은 “대선에서 패배한 이 전 총재뿐만 아니라, 승자인 노 대통령에 대해서도 공정한 잣대로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전 총재의 회견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은 이 전 총재가 검찰 수사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노 대통령은 표적수사를 지시한 적도 없고, 검찰 수사에 개입한 일도 없다”고 반박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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