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이던 1992년 말 530억원이던 안기부 예산 잔액이 1년여 만인 1994년 3월 말 3030억원으로 2500억원이 급증했다는 것.
이 사건으로 기소된 강삼재(姜三載·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의원의 변호인단은 10일 “최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노영보·盧榮保)에 ‘안기부 잔액에 외부 자금이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반환하지 않은 예산 불용액이나 이자 증가분 등을 감안하더라도 1년 동안 증가한 2500억원 가운데 최소 2000억원 이상은 외부에서 유입된 자금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 공판에서도 “안기부의 가차명 계좌를 통해 공식 예산 이외의 자금이 세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측은 소견서에서 1993년 1월 4일부터 9월 14일까지 126차례에 걸쳐 수천만∼수억원씩 모두 28억여원의 가계수표가 안기부 차명계좌 중 하나인 국민은행 이문동지점 국제문제연구소 계좌에 입금된 사실도 적시했다.
정부 예산을 집행하는 안기부의 경우 국고 수표를 발행해야 하는데 일반 기업이나 가계 거래에 사용되는 가계수표가 입금될 이유가 없다는 것. 따라서 가계수표로 입금된 돈은 안기부 공식 예산이 아닌 ‘수상한 자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변호인측 주장이다.
변호인측은 또 연간 3000억원 안팎인 안기부 예비비가 매년 1, 4, 7, 10월에 분기별로 집행되는데 1993년 4월과 7월에는 각각 800억원과 700억원이 입금된 반면 같은 해 1월(1050억원)과 10월(1415억원), 94년 1월(2077억원) 3월(1073억원)에는 훨씬 큰 금액이 입금된 만큼 외부자금이 들어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초까지 당시 안기부가 한국투자증권과 현투증권 등 7개 금융기관에 개설해 관리한 8개 차명계좌의 7257개 입출금 내역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당시 안기부 운영차장을 맡았던 김기섭(金己燮)씨는 “실무자가 아니어서 모른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 상황. 재판부는 김기섭(金己葉)씨의 전임자로 노태우(盧泰愚) 정권 시절 안기부 기조실장을 맡았던 엄삼탁(嚴三鐸)씨를 12일 열리는 공판의 증인으로 채택한 상태여서 엄씨가 어떤 증언을 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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