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7년 ‘트루먼 독트린’ 선포

  • 입력 2004년 3월 11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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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은 여기 머문다(The buck stops here).’

‘원폭(原爆)투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고독한 결정을 내렸던 해리 트루먼. 그가 대통령 재임시절 백악관 집무실에 써놓은 글귀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이 관용어의 유래는 서부 개척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커게임에서 딜러 앞에 손잡이가 사슴뿔로 된 칼(buckhorn knife)을 놓아두던 관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내가 딜러다. 책임은 나에게 있다.’

1945년 1월 부통령에 취임한 지 83일 만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급서로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트루먼.

루스벨트가 죽었을 때 미 전역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내 두려움과 공포가 번져갔다. “루스벨트 없이도 과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대공황은 넘겼지만 16년째 계속되는 경제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까….”

트루먼 자신도 당시를 “달과 별과 모든 유성이 갑자기 나를 향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국민들은 그를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졸(高卒) 출신에 미주리주 읍내의 시골뜨기라니! 국민의 절반이 그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놀랄 만큼 침착하게 차례차례 결단을 내렸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궤멸, 일본 원폭투하, 유엔 출범, 트루먼독트린 선포…. 그리고 마셜플랜 추진, 나토 창설, 한국전 파병….

트루먼은 그 숨 가쁜 결단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대통령직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과 같다. 계속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

전후(戰後) 어렵게 찾아온 평화의 온기(溫氣)는 어느덧 싸늘하게 식었고, 트루먼독트린으로 차갑게 얼어붙는다. 트루먼은 1947년 3월 의회에서 그리스와 터키의 반공정권에 대한 군사지원을 요청하면서 ‘먼로주의’와 결별을 선언한다. 포성(砲聲) 없는 전쟁, 냉전의 선전포고였다.

트루먼독트린은 6·25전쟁 당시 미국의 즉각적인 파병의 빌미가 되었다.

이쯤에서 호사가들은 묻는다. 만약 그때 트루먼이 맥아더의 요청대로 만주에 원폭을 투하했다면? 실로 끔찍한 상상이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위기에 앞서, 세계는 이미 ‘인내’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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