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화이트데이가 없다. 밸런타인데이는 한국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화려하고 요란하다. TV광고며 쇼핑몰이 온통 빨간색 하트 모양 초콜릿으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그런데 그 ‘요란함’의 내용이 한국과는 퍽이나 다르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선물(사탕 또는 초콜릿)을 학생 수만큼 사서 카드와 함께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밸런타인데이가 어떤 날인지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16개의 초콜릿과 카드를 보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의 손에는 16명이 각기 가져온 초콜릿과 카드가 들려 있었다고, 그걸 갖고 집 문을 들어서며 아이가 얼마나 흥분하고 신나했는지 모른다고 아내가 말해 주었다. 아이의 흥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퇴근해 집에 오자마자 우편함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영문을 몰라 하는 나에게 아내가 “어서 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떼밀려 나가 열어본 우편함에는 아이가 비뚤비뚤한 글씨로 아빠에게 쓴 편지와 초콜릿 상자가 놓여 있었다. 지친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나중에 아내가 들려준 바로는 아이가 우편함에 선물을 넣으면서 아빠가 얼마나 놀랄지를 상상하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에게 받았을 때, 기대하지 않았는데 받았을 때 그 기분은 열 배는 더한 것 같다. 그러나 선물 받을 사람이 기뻐할 것을 상상하며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밸런타인데이에 아이는 바로 이런 사실을 배웠던 것이다.
이호진 미국 테네시주 센주드 어린이연구병원 연구원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