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고암의 고향은 홍성군 홍북문 중계리로 알려져 왔다. 이 때문에 홍성군과 홍성지역 문화계는 2002년부터 ‘고암 청소년 미술실기대회’를 해마다 열어왔으며 최근에는 대전시와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고암 미술관’ 유치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산문화원은 “최근 예산군 덕산면사무소에 보관된 고암 조부의 제적부(1925년)와 고암 본인의 호적부(1938년)를 확인한 결과, 고암의 출생지는 ‘덕산면 낙상리 24’로 확인됐다”며 주장했다. 낙상리와 중계리는 두 군의 접경지역이다.
홍성문화원은 그 보다 앞선 기록을 반박 자료로 제시했다. 문화원 측은 고암의 부친인 근상씨가 “동생(근주)이 독립운동을 하다 빼앗긴 유품을 되돌려 달라”며 1910년 일본 헌병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자신의 거주지를 ‘홍천 중리(중계리의 옛 이름)’로 적었으며 현지 주민들에 확인한 결과 근상씨가 당시 여기서 고암을 낳았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확인한 결과 2차 기록들은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홍성=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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