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에 다닐 나이. 그러나 교사 대신 아빠 엄마(46)가 가르친다. 1학년 말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홈스쿨링의 시작은 김씨가 은혜에게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직접 사회과목을 가르친 것이 계기가 됐다. 김 교수는 은혜가 시험을 앞두고 외울 것은 많은데 하나도 모르겠다고 넋두리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연구실로 불러 함께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오후 7시에 시작해 자정까지 시험준비를 했는데 이틀간 시험범위를 다 공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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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연구실 계단을 팔짝팔짝 뛰어내리면서 “다 외우지는 못해도 아빠의 설명을 들으니까 이해를 할 수 있어 자신감이 생긴다”고 즐거워했다.
“많은 학생을 가르쳐온 제가 정작 자식에게 신경을 못 썼다는 후회와 함께 아이에게 맞춤식 교육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혜는 좋아하는 과목은 열심히 해도 잘 모르는 과목은 흥미를 느끼지 못해 아예 하려고 들지 않았거든요.”
이 부분에서 은혜는 “학교에서는 모르는 것이 있어도 분위기상 질문을 못 한다”며 “내가 그 수준을 따라 가야 하는데 학원을 다녀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홈스쿨링에 끌린 데는 맞춤식 교육을 할 수 있는 것 외에도 부모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교육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맏이(군복무 중)가 잘 자라주었지만 김 교수와 가치관이 달라 부닥치는 일이 많았다. 특히 맏이는 김 교수가 유학과 교환교수 등으로 미국을 오가는 7년간 일곱 번 학교를 옮겼다. 김 교수는 맏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미국에서 키울 요량으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반의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내린 결론은 이것은 온전한 가족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래서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을 설득해 온 가족이 귀국했고 고3 학부모로 입시경쟁도 경험했다.
“저 자신도 입시지옥을 통과했지만 자식세대에는 없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학교는 인성교육을 할 여유가 없지요.”
홈스쿨링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영어로 된 정보의 습득 때문이다. 지난해 중학교 2∼3학년 과정을 다 끝낸 은혜는 다음달 중등학력인증 검정고시를 치른 뒤 앞으로 1년간 영어교과서로 공부할 예정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정도 가지고는 안 되고 정보를 얻고 가공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영어교육에 대한 생각이다.
은혜는 아빠에게서 수학과 사회를, 생물학을 전공한 전업주부인 엄마에게서 과학을 배운다. 부모가 일일이 가르쳐주지는 않고 수준에 맞게 공부할 양을 정해주고 체크한다. 다만 꼭 곁에서 함께 있어야 공부가 된다.
김 교수 부부는 홈스쿨링을 하는 다른 가정과 함께 오케스트라도 운영하고 있다.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방학이면 어학연수나 각종 캠프에 참가시킨다. 부모들과 함께 도자기 수업도 받고 파티도 가끔 연다.
김 교수 부부는 막내딸인 은선이(5)에게도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유치원에도, 학원에도 보내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홈스쿨링을 하는 게 아이들이 적응하기 좋다고 합니다. 교육은 오히려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게 훨씬 많아요. 25년의 경험을 가진 미국의 홈스쿨링이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김 교수 부녀가 말하는 홈스쿨링 ABC▼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인데=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정원 외 관리’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나 조기유학 중인 아이도 포함된다. 아이가 학교의 억압적인 환경을 견디지 못해 홈스쿨링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싶으면 검정고시를 봐야한다.
▽부모가 지적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데=부모가 대졸 학력이면 초중등 과정은 가르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모 중 한 명이 직업을 갖지 않고 자녀의 학습에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부모 둘 다 프리랜서로서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성이 부족해지기 쉽다는데=사회성이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는 부모 및 나이가 다른 형제, 학교 밖 다양한 친구들과 지내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성이 높다. 김 교수는 “또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나이에 성인을 만나다 보니 훨씬 어른스러워진다”고 강조하는 데 비해 은혜는 “아무래도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안나는데=학교에 다니지만 학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치는 ‘복합형 홈스쿨링’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를 발간하는 민들레출판사(www.mindle.org)와 기독교대안교육협의회(www.caeak.com) 홈페이지는 홈스쿨링 방을 별도로 운영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김 교수의 홈페이지(www.swkim.com)에 와서 자료를 얻을 수도 있다.
▽혼자 하기는 벅찰 텐데=그래서 몇 가정이 커뮤니티를 이뤄 함께 홈스쿨링을 하는 게 좋다. 부모의 수업부담도 줄고 아이들끼리 어울리기도 좋다. 실제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가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어려운 만큼 신중하게 선택하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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