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 신입생에게 2005학년도 대학 입시제도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다. 지난 3년간 공부에 짓눌려 지내다 이제 막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대학 새내기가 정말 ‘그딴 일’을 뒤돌아보고 싶을 리가 없다. 아마 이 학생의 부모도 오랜만에 삶의 여유를 되찾았으리라.
학생 학부모 교사는 모두 교육의 주체지만, 그 가운데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 생산자인 교사와는 확연히 다르다. 교육 소비자는 일단 졸업하면, 또 학업 목표를 달성하면 교육 현장에 좀처럼 미련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 생산자인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가 관심을 거두더라도 교육 현장을 지킨다. 이 때문에 공교육 정상화는 터줏대감인 교사가 주체로 나서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는 과제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2·17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땜질 대책’이다. 이 대책의 간판격인 교육방송(EBS)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는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공급확대 정책일 뿐이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이런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안병영(安秉永) 장관은 이 정책을 ‘해열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환부가 깊은 공교육의 치료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본보가 연재하고 있는 ‘사교육 대책 후 첫 학기’ 시리즈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교사를 ‘원망’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또 많은 분들이 특별취재팀에 e메일을 보내 교사가 바로 서고 나아가 공교육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심정을 털어놓고 있다.
“공교육을 활성화하려면 교사들도 경쟁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교사로 거듭나야지요. 학생이 좋고, 교육이 좋아 교사가 된 순수한 교육자들이 소외받는 어처구니없는 공교육은 고쳐져야 하지요. 그래서 교사도 3, 4년에 한 번씩은 걸러져야 합니다.”
서울지역 김모 교사가 보낸 e메일의 한 대목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들이 교육에 경쟁요소를 도입하는 데 한사코 반대하는 점으로 미뤄 김 교사의 주장은 교사 대부분의 생각은 아닌 듯싶다. 하지만 교육 소비자의 눈으로 보면 이 주장은 너무도 당연하다.
교사들은 취재기자들에게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한다. 잡무에 매여 교재를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고 교육 기자재나 시설이 낡아 알찬 교육을 할 수 없을뿐더러 수준별 수업에 필요한 교재도, 매뉴얼도 없다는 것이다. 또 학부모와 학생의 지나친 경쟁심이 공교육 정상화의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교육을 살린 학교도 적지 않다. 본보 시리즈에 소개된 서울 성심여고, 대구 영신고, 서울 한가람고 등은 좋은 사례다. 이들 학교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눈을 바라봤다. 그 눈을 보며 오로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모든 어려움을 열정으로 이겨냈다.
교육부는 ‘해열제’의 효과가 떨어지기 전에 교사의 열정을 살릴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고 추진해야 한다. 교사들은 환경을 탓하기 전에 터줏대감으로서의 자존심과 열정을 갖고 힘든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한다.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자녀를 위해 공교육을 살려주시길 교사들에게 머리 숙여 부탁드린다.
하준우 사회1부 차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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