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 박경리선생 주장에 대해 조경인 임승빈씨 반론

  • 입력 2004년 3월 16일 19시 24분


《청계천 복원공사의 문화재 훼손 논란과 관련해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의견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조경학회 임승빈 회장(서울대 교수·조경학)이 기고를 보내 왔다. 이 글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특별기고 ‘청계천, 복원 아닌 개발이었나’(본보 6일자 A27면 게재)에 대한 반론이다.》

며칠 전 박경리 선생이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 ‘청계천, 복원 아닌 개발이었나’를 읽고 우리 조경인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경 전문가가 ‘나라에 바치는 정성과 사물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선생의 표현은 ‘조경 때문에 복원이 희생된다’는 구절과 더불어 수십만 조경인의 가슴에 큰 못을 박았다.

물론 그러한 표현은 조경을 폄훼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청계천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취지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조경가와 조경에 대한 인식의 오류와 편견만큼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것이 많은 조경인의 입장이다.

박 선생의 글에는 조경이 복원과 정반대의 철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조경은 대지가 겪는 모든 과정을 감안하고 그것을 살리고 보존하는 가운데 인간의 새로운 활동을 담고자 노력해 왔다. 대지의 자연 생태적 속성과 인문학적 역사적 맥락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남겨야 할 것은 보존하고 강조할 것은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기본 철학이다.

박 선생의 오해를 두 가지 측면, 즉 역사적 복원의 측면과 개발의 측면에서 짚어 보자.

우선 역사문화의 복원 문제부터 살펴보면 청계천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아름다운 하천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도성 안의 생활하수를 흘려보내는 도시하천이었던 것이다.

수표교와 광교를 원래 그 자리에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없는 것은 조경인에게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다시 돌아오는 청계천은 과거의 문제를 해결한 뒤 ‘새롭게’ 돌아오는 하천이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청계천은 박제를 만들 듯 과거 그대로 ‘복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태적 문화적으로 ‘개선’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 청계천에는 과도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선두에 조경이 서 있다는 박 선생의 지적에 대해 얘기해 보자.

복원되는 청계천의 총 길이는 양쪽을 합하면 12km이지만 조경 공간이 특별히 강조된 곳은 7경으로 표현된 장소들뿐이다. 이 일곱 곳의 총연장은 대략 140여m이므로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공사비만 놓고 보더라도 청계천의 조경공사비는 약 420억원으로 총공사비의 8% 남짓이다.

규모나 공사비로 볼 때 ‘그리 크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공간인 청계천에 덧붙이고 꾸미고 구조물이 들어앉을 조경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라는 선생의 지적은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청계천 복원 계획은 프랑스의 센강변 이상으로 더 화려하게 포장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략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생략이 선생의 표현처럼 한국의 공간 미덕이라면 그 점은 청계천에서 아주 충실히 발휘되어 있다.

센강이나 라인강은 박 선생의 말씀처럼 조경을 전혀 하지 않은 곳이 아니라 매우 집약적으로 조경을 한 사례이다. 수수한 라인강의 모습이나 담백한 센강의 모습은 모두 조경가의 손길을 거친 조경 작품이다.

‘예산이 넉넉지 못할 경우 조경은 안 해도 되는 부분이다’라는 박 선생의 주장에 수긍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경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화장술이 아니다. 외부 공간 혹은 토지를 계획·설계·시공하는 분야인 조경의 손길이 생략된 공간은 마치 골격만 있고 살과 피부가 없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건설 역사에서 조경은 3차원의 공간과 4차원의 시간 위에 의미와 역사·문화를 담는 ‘5차원의 토지예술’로 성장해 왔다.

임승빈 한국조경학회 회장·서울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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