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최모씨는 “개학 이후 상위권반 수강생 150명 가운데 55명이 학원을 그만뒀다”면서 “학교별로 방과 후 보충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탈 학생은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강사 박모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학원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개인 과외 등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지었다.
개학 이후 학원 등 사교육 시장이 크게 움츠러들고 있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이 오후 10시까지 학교에서 보충학습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자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학원들은 존폐 위기를 맞았다. 서울지역 학원은 시교육청 조례에 따라 오후 10시 이후 강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원가 된서리=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 등 서울의 대표적인 학원가가 된서리를 맞았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방과 후 보충수업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강남지역에 비해 서울 강북지역 학원들은 더욱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학원연합회) 노원구지부 권석일 회장은 “대형 학원들도 수강생의 20∼30%가 줄었고 소규모 영세학원들은 폐업하거나 업종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연합회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학교 학원화 저지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대책에 항의하려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집회를 다음달로 연기했다. 학원연합회는 서울시교육청의 ‘10시 이후 학원수업 금지’ 조례에 대해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양천구 C학원 관계자는 “학원 원장들 사이에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순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변해야 산다=학원들은 평일 수업을 줄이고 단과반이나 주말반을 늘리거나 인터넷으로 강의 자료를 무료 제공하는 등 새로운 생존 전략을 짜느라 고심하고 있다.
서울 중계동 D학원은 종합반을 모두 단과반으로 바꿨고 대치동 M학원은 주말에는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집중 과정을, 평일에는 성적이 우수한 일부 학생만 지도하는 소수 정예반을 만들었다.
일부 학원은 학원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강의나 학습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학원의 불법, 탈법 운영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학원들이 오후 10시 이후 몰래 고액 강의를 하고 그 부담이 결국 학부모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불안한 학부모=고교 3년생 자녀를 둔 박모씨(46·여·서울 노원구 중계동)는 “정부는 교육방송(EBS) 강의를 듣고 학교에서 보충학습만 받으면 수능 준비에 충분하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이를 믿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학교 보충학습과 학원 수업을 어떻게 연계해야 효과적일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중계동 B학원이 개최한 입시설명회에 학부모 수백명이 몰리기도 했다.
중계동 학림학원 박호상 기획실장은 “학원은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상호 보완책 마련해야=이번 기회를 사교육이 공교육을 보완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보습교육협의회 이성관 서초지구협의회장은 “학교에서는 일반 과목을 중점 지도하고 학원은 주제별 강좌나 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수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사교육연구특임센터 김홍원(金洪遠) 박사는 “다양한 교육 욕구를 공교육만으로 충족시킬 수는 없다”면서 “단기적인 극약 처방보다는 공교육과 사교육이 서로 장점을 공유할 수 있는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홍성철 기자(팀장)
이헌진 이완배 손효림 길진균 조이영 정양환 유재동 전지원 기자(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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