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8시반 충남 논산시 부적면 논산장례식장. 폭설 피해를 비관해 자살한 농민 이영근씨(53·논산시 광석면 율리)의 빈소를 찾은 주민들은 고통스런 삶이 이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털어놨다.
이 마을은 1957년대 형성된 나환자 정착촌. 45가구 100여명의 주민이 돼지(8000마리)와 닭(4만 마리)을 키우며 겨우겨우 살아왔다.
하지만 구제역에다 돼지콜레라 등으로 지난 3년 동안 돼지 값이 바닥을 기자 생활이 부쩍 어려워 졌다. 한 주민은 “가구당 사료 외상값을 포함해 5000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일반 축산농가에 비해 허리가 더 휘는 이유는 빚이 대부분 농협 융자가 아닌 사채이기 때문. 아무도 이 마을의 집이나 땅을 사려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을 담보로 한 융자가 어렵다.
숨진 이씨도 사료 값 등 영농자금으로 6000여만원의 빚을 끌어 썼다. 최근 조류독감으로 돼지 값이 올라 잠시 희망에 차있었지만 4, 5일 내린 폭설로 축사가 박살이 났고 돼지도 죽자 무척 비관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이씨는 평소 자식에게 교육비를 제대로 대주지 못한 자신을 비관했다. 큰 딸(24)과 둘째 딸(22) 모두 제법 공부를 잘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비를 스스로 벌기 위해 한해 걸러 한번씩 휴학하고 있다.
둘째 딸은 1학년을 다닌 뒤 올해 휴학을 하고 논산시내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위해 첫 출근했다가 비보를 들었다.
주민들은 이번 폭설피해 복구과정에서도 소외됐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 마을의 생업기반인 축사의 절반 이상이 붕괴돼 다른 마을보다도 훨씬 피해가 컸지만 자원봉사자는 거의 구경도 못했다. 피해복구 첫날인 6일 논산훈련소 장병들이 일부 찾아와 마을 안길 제설작업을 한 것이 전부였다.
이 마을 관계자는 “현재 50세를 넘은 마을 청년회 회원 17명이 외로이 붕괴축사 철거 등 폭설피해를 복구하고 있다”며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많은 세상살이 괴롭다. 부채는 늘고 살림은 줄고 생을 마감해야 해결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15일 인근 야산 중턱에서 극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논산=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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