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노동부-한국노총 ‘오십보 백보’

  • 입력 2004년 3월 19일 18시 21분


19일 낮 12시40분경 서울 프라자호텔 5층. 노사정 대표 간담회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수십 명의 취재진 앞에 노동부 남석현 공보관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그는 “한국노총이 경총의 임금 협상 지침에 문제를 제기하며 불참하겠다고 알려 와 모임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김대환(金大煥) 노동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 노동부가 ‘큰맘 먹고’ 추진한 첫 노사정 대표 회동이 어이없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이날의 해프닝은 노사정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한국노총의 ‘무책임하고 어린애 같은’ 태도와 노동부측의 ‘한건주의’가 맞물려 빚어졌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한국노총은 노동부가 하루 전인 18일 ‘노사정 대표 간담회 개최’ 보도자료를 내고 이 사실이 보도된 뒤에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노동부의 한 간부는 “이남순(李南淳) 한국노총 위원장이 참석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회동 일정을 발표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노총 관계자는 회동이 무산된 뒤 “우리는 간담회에 간다고 한 적이 없다. 실무 차원에서 누가 논의하고 결정했는지도 모른다”고 변명했다.

한국노총 내부에선 노사정 회동에 대해 “대기업 임금 동결이라는 지침을 내린 경총과 어떻게 마주앉아 노동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느냐” “총선에서 녹색사민당(한국노총의 정치조직)의 표를 깎아 먹는 짓이다”는 등의 말의 오갔다는 후문이다.

한국노총이 꼭 참석할 의사가 없었다면 이를 미리 알렸어야 했다. 실제 경총이 임금 지침을 발표한 날짜는 17일이기 때문에 참석 여부를 밝힐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회동을 불과 2시간여 앞두고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또 노동부도 한국노총의 참석 여부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이벤트성 회동을 추진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날 이수영(李秀永) 경총 회장은 회의장에서 혼자 기다리다 “간담회가 취소돼 미안하다”는 김 장관의 전화를 받고 발길을 돌렸다. 김 장관은 이남순 위원장을 직접 만나 참석할 것을 요구했으나 실패하자 회담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종훈 사회1부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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