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떳떳해요.”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우리 사회의 주부들은 자원봉사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자원봉사란 선진국형 문화다. 자원봉사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
전업주부들이 자원봉사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인 남편은 시간이 없고 우리나라 주부들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학력수준이 높은 반면 취업률은 낮다. 여기에다 청소년 자녀의 자원봉사 활동이 내신에 반영되면서 자원봉사에 자녀를 동반하고자 하는 욕심(?)까지 더해서 주부들의 자원봉사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우연찮은 봉사 기회
봉사활동에 나서게 된 직접적 동기는 제각각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고귀한 선물’을 운영하고 있는 정선옥씨(41·서울 마포구 연남동)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도서관을 드나들다 3년 전부터 아예 도서관 봉사요원으로 나섰다.
“도서관에서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요. 일요일에 중 2, 초등 5학년 두 아이와 한 시간 동안 책을 정리하고 한 시간은 책을 보고 옵니다. 도서관에 가지 않는 날은 일산천사원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봉사하고 토요일에는 아이들 학교 학부모들과 경기 양평에 있는 독거노인을 찾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정씨의 인터넷 카페는 아이들의 학교인 경기초등학교와 한성중학교 학부모들의 자원봉사 연락처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소속 문진순씨(49·충남 금산군 금산읍)는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10년간 간병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6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찾아가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지요. 한 달에 열흘 정도 봉사를 나가 목욕 반찬만들기 청소 말벗을 해드리지요.”
서울 강남구여성센터의 학습동아리인 ‘보람을 찾는 영어사절단’의 손명희씨(53·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뛰어난 영어실력을 발휘해 국제회의나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한글학교에서 봉사하고 있다.
“남편의 유학시절 미국에서 4년간 살아서 영어는 웬만큼 했어요. 나이 들면서 남을 위해 시간을 쓰자는 생각에 5년 전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일요일마다 다른 주부 10여명과 함께 성동구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 한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넓어지는 봉사 영역
최근 2004 서울 세계여성지도자회의(5월 27∼29일)에서 일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서울여성플라자 자원활동센터는 깜짝 놀랐다.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 가능자와 국제회의 관련 자원봉사 경험자를 대상으로 150명을 모집했는데 지원자 380명 중 주부가 20%나 됐다.
예술의전당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등 10개 공연장 및 전시관에서 봉사하고 있는 주부 150명은 문화자원봉사자회(문봉회) 소속이다. 이들은 한국문화복지협의회가 실시하는 문화전문 봉사교육 3개월 과정을 이수했다. 공연안내, 전화상담, 객석안내, 유아실 관리 등을 맡고 있다.
국공립박물관과 사립미술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슨트(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도 80% 이상이 주부들이다.
문봉회 회장 공석분씨(58·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주부들에게 봉사가 전문적 활동이라는 인식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시작하기가 가장 쉬운 게 노력봉사.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순이씨(48·강원 인제군 인제읍)는 지난해부터 금요일 점심시간에 혼자 사는 노인 23명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여성단체에서 도시락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바삐 움직이면 차로 한 시간이면 다 돌린다.
30대 초반부터 동네 주부들과 봉사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김금순씨(44·울산 동구 방어동)는 요즘에는 화, 목요일 오전 9시 경로당에서 청소와 점심식사 봉사를 하고 있다.
○보람 그리고 아쉬움
주부들은 봉사활동이 자긍심과 함께 보람을 안겨줄 뿐 아니라 자녀교육이나 가정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씨는 “처음에는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 독거노인들이 요즘엔 ‘도시락 왔다’고 하면 공과금을 내 달라거나 이발할 때가 됐다고 말을 건넬 때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에서 봉사하는 채경미씨(31·서울 도봉구 창동)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항상 공연이나 문화를 가까이 접할 수 있어 생활이 활기차졌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아이들이 1등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봉사하는 엄마를 봐 왔기 때문인지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주부들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꼭 맞는 일거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주부 정지원씨(34·경기 용인시)는 “프랑스어를 전공했는데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며 정부가 다양한 자원봉사 영역을 개발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주부 자원봉사 성공5계명▼
▽‘천사표’만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도 안 챙기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느냐고 반문하는 주부가 많아요. 그럴 땐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어떻게 가까운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를 챙기지 않겠느냐고 대답하지요.(정선옥씨)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라=노력봉사를 하다 보면 몸에 부칠 때가 많아요. 한 사람이라도 들어오면 그만큼 편해집니다. 힘들다고 다 놓아버리면 누가 그 일을 하나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 비해 봉사자는 많이 부족하고 누군가 나서서 해야지요.(문진순씨)
▽봉사팀을 만들어라=혼자 봉사활동을 시작하면 한두 번 하다 그만두게 됩니다. 단체를 만들어 같이할 때 힘을 얻고 서로 부족한 점도 메워줄 수 있습니다.(손명희씨)
▽먼저 가족을 이해시켜라=5년 전 남편이 “당신이 왜 그 일을 해야 하느냐”며 반대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설득했지요. 남편과 아이들의 이해 없이는 봉사하기 힘들어요.(김금순씨)
▽무리하지 말라=주부들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중간에 몇 번 빠지게 되면 미안한 마음에 아예 봉사현장에 나타나지 않아요. 집에서 가깝고 봉사시간이 무리가 없어야 중도포기하지 않지요.(공석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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