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0만명 정규직화, 감당할 수 있나

  • 입력 2004년 3월 25일 18시 41분


노동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10만명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해소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부의 이번 대책은 부작용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오죽하면 정부 안에서조차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하겠는가.

민간부문에 미칠 일파만파의 파장이 무엇보다 걱정스럽다. 비정규직 축소와 처우 개선이 올해 노사협상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번 대책은 노동계의 입지를 일방적으로 강화할 소지가 많다.

노동계의 요구를 들어주고도 기업의 경쟁력이 유지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나쁠 건 없다. 그러나 국내기업들은 고임금을 견디다 못해 중국 등으로 앞 다퉈 빠져나가고 있고 외국기업들은 지나친 고용경직성 때문에 한국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정규직은 기득권을 그대로 누리면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힘으로 밀어붙이면 산업공동화(空洞化) 속도가 빨라지고 안정된 일자리만 줄어들 뿐이다.

노동부의 대책이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키울 위험성도 적지 않다. 공공부문의 효율성 제고는 세계적인 추세일 뿐 아니라 비정규직 보호에 못지않게 중요한 당면 과제다. 이에 역행해 공공부문의 몸집을 불리고자 할 때는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생산성 향상 대책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재정은 여력이 별로 없다. 총선을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선심성 대책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비정규직 대책이 기대감만 잔뜩 키워 놓고 예산 부족으로 용두사미가 된다면 애당초 대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 노동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실효성 있게 논의하려면 필요한 예산 규모와 조달 방안부터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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