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계약 거부 “노숙자 보호소 그렇게도 거슬렸나”

  • 입력 2004년 3월 31일 18시 50분


“우리가 갈 곳이 없어지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들 노숙자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서울 도심에서 하루 3000여명의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던 노숙자보호쉼터가 주변의 냉대와 부족한 예산 탓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자리한 ‘예수사랑선교회’는 1998년부터 허름한 건물을 개조해 만든 노숙자들의 쉼터. 평균 120명의 노숙자가 이곳에서 생활하며, 서부역 등지에서 아침 점심으로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해 왔다.

서울시에서 지원한 돈으로 겨우 임대료를 내왔던 노숙자쉼터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경. 평소에도 이웃들로부터 “불편하니 나가달라”는 항의를 받아오던 차에 건물주까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 쉼터측은 갈 곳이 없어 막막해 하다가 겨우 시와 종로구청의 도움을 받아 경기 양주시의 한 옛 공장부지로 옮겨가기로 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지 구입비와 수리비 등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게 되자 당초 긴급예산을 투입했던 시나 구청측도 갑작스러운 추가부담이 어렵게 됐고 결국 더 이상의 돈을 마련하지 못한 쉼터측은 이사는 가보지도 못하고 계약금 4500만원만 날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산도 안 잡힌 상황에서 쉼터 이전을 위해 3억5000만원을 지원해 주기로 했으나 추가로 1억∼2억원이 더 든다고 하니 그만한 돈을 갑자기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쉼터를 운영하는 김범곤 목사는 “요즘은 일반인의 지원이 워낙 부족해 시나 구청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계약금을 날린 건 둘째 치고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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