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동아를 만드는 전문기자]亞의 24시…그들의 24시

  • 입력 2004년 3월 31일 19시 39분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기자의 모습은 가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엔 기사 못지않은 사건과 드라마, 웃음과 고민이 숨어있기도 하다.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전문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8명의 일상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스포츠레저부의 여행 전문 스포츠레저부 여행 전문 조성하 기자조성하 기자가 =얼마 전 영국 런던하이드 파크 인근 바에서 혼자 칵테일을 마시고 있을 때의 일. 창가 좌석에 앉아 있던 한 영국 남성이 조 기자에게 칵테일을 한 잔 보내 왔다. 그 남자는 조 기자에게 암시적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조 기자는 이 남성에게 다가가 신사적으로 말했다. “You are so attractive. But I’m busy(당신은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전 바쁩니다).”

동성애자의 접근을 능숙하게 거절하는 법을 포함해 여행 담당 기자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무게 17kg의 카메라 장비와 노트북 컴퓨터를 짊어지고 비행기로 1년에 지구를 10∼12 바퀴 도는 조 기자는 매달 33만원을 내는 보험금 2억5000만원의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는 상태. 여행면을 맡아온 지난 10년 간 추석 차례를 네 번이나 지내지 못했다. 요즘 그는 ‘위치표시 혼란’ 증세란 일종의 직업병을 앓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나라의 어떤 도시에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해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는 장애가 생긴 것이다.

◆경제부 북한경제 전문 신석호 기자=경제부 신석호 기자는 북한경제 전문 기자. 그는 북한이 경제개혁 프로그램인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단행했던 2002년 6월을 비롯해 세 차례 북한을 방문 취재했다.

신 기자는 취재환경이 제한된 북한을 꿰뚫어보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방문 때마다 똑같은 장소를 반복 취재하는 것이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동일한 길을 지나가면 북한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의 변화, 간이 매대(일종의 거리판매대)에서 파는 물건의 변화 등을 메모하며 북한 경제의 움직임을 잡아낸다. 협동농장 지배인이 지난번과 달리 머릿기름을 바르고 나온 것도 북한 경제의 지각변동을 말해주는 작지만 중요한 단서다.

북한통인 그에게 북한은 가깝고도 ‘의외로’ 멀다. 2002년 6월 그가 평양 체류 중 서해교전이 터졌다. 그는 북한을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중국에서 한국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자 아내는 흐느꼈다. “당신 못 돌아오는 줄 알았어.” “사랑한다”면서 부인을 다독거린 그는 ‘모르는 자의 행복’을 실감했다.

◆문화부 서평, 클래식음악 전문 유윤종 기자=문화부 유윤종 기자(서평 및 클래식음악 전문)는 1997년부터 매주 쏟아져 나오는 신간 서적들의 서평을 맡아 왔다. 한 주 평균 20권의 책을 ‘넘겨보고’, 4권의 책을 ‘정색하고 독파’한다. 성미 급하기로 소문난 그는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기사 작성을 끝내기까지 평균 2시간반이라는 속도를 자랑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키워드에 집중한다”고 속독 비결을 밝히는 그는 모든 식사(뜨거운 음식 제외)를 5분 내에 해치우는 속식가(速食家)이기도 하다.

그는 5세 때부터 15권짜리 ‘동아 세계대백과사전’을 들춰보면서 책에 묻혀 살았다. 4세 때부터 ‘전축’을 직접 조작하며 LP레코드판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어머니가 “제발 친구들과 어울리라”면서 그를 강제로 내보내고 대문을 잠가버렸던 쓰라린 과거도 간직하고 있다.

◆편집부 김대호 기자=사흘에 한 번꼴로 오전 5시까지 야근하는 편집부 김대호 기자는 동아일보의 밤을 지키는 파수꾼. 야근 때 그는 밤에 시시각각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A1면, 사회면, 국제면 등 주요 지면을 다시 짠다. 밤새 편집국으로 걸려오는 취객들의 전화에 일일이 응대하는 것도 그의 부수업무가 돼 버렸다. “술 먹고 시비가 붙었는데 경찰이 부당하게 나를 잡아갔다” “친구와 내기했다. 서울시 인구가 정확하게 몇 명이냐”는 전화에 그는 이골이 났다. 아침 퇴근 후에도 그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단 제목과 기사 판단, 사진선택 등을 다른 신문과 면밀히 비교하고 스스로 승패를 가린 뒤에야 잠자리에 든다. 날마다 집 근처 공원에서 조깅하고, 점심시간에는 한 시간 내에 인왕산 정상을 왕복하는 방법으로 건강을 다진다.

◆어문연구팀 여규병 기자=어문연구팀 여규병 기자그는 17년 째 기사의 오탈자 및 잘못된 용어 사용, 이름 지명 기업명 등 고유명사 표기의 잘못을 가려내 바로잡아 왔다. 하루 최소 8개면(약 3만2000자)의 기사를 돋보기 들이대듯 한 글자 한 글자 살펴본다. ‘시합’ ‘진검승부’ ‘내역’ 등 일본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그의 눈길을 벗어날 수 없다. 그에겐 독자가 특히 더 무섭다. “‘은행들마다’란 표현은 잘못됐다. ‘마다’는 복수를 나타내는 조사이므로 ‘들’은 중복 사용”이라는 지적까지 독자들의 꼼꼼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글자 한 글자 ‘뜯어 읽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책을 읽으면 오탈자만 보이고 책 내용이 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후유증도 생겼다.

◆디지털뉴스팀 정보검색전문 권혜진 기자=권혜진 기자는 일선 기자들이 ‘아날로그 취재방식’으로 통과하기 어려운 정보의 병목 구간을 디지털 방식으로 ‘뚫어’주는 역할을 한다. 2000년 11월 ‘멕시코에 거지 출신 30대 여 장관 탄생’ 기사가 그 예. 기자들은 여성장관의 사진을 입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어떤 영어권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권 기자는 스페인어로 된 멕시코 방송사 사이트를 스페인어-영어 번역 프로그램을 사용, 실시간으로 번역해 보면서 사진을 찾아냈다.

권 기자는 ‘디지털 또순이’다. 인터넷에 급매물로 나온 아파트(현재 거주)를 구입했다.

◆국제부 외교안보 전문 김정안 기자=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사회학과를 나온 국제부 김정안 기자(외교안보 전문)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문제는 가급적 외신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취재한다’는 것. 그는 미 국무부에 직접 전화나 e메일을 보내 당국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동아일보 신년기획 시리즈 ‘워싱턴의 한반도정책-무버&셰이커(Mover & Shaker)’를 기획 연재해 미국의 한반도 당국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전달하기도 했다.

◆사회2부 건강전문 이진한 기자(의사)=2002년 말부터 8개월간 동아일보 헬스 섹션에 ‘의사와 약사의 육아일기’라는 칼럼을 약사인 아내와 함께 집필했던 사회2부 이진한 건강전문 기자(의사). 그는 의사란 사실 때문에 피곤할 때가 더 많다.

그에겐 아침마다 “속이 안 좋다” “건강검진에서 백혈구 수치가 이상하게 나왔다”며 상담을 원하는 편집국 기자들이 줄을 선다. 이들을 간단하게 치료(?)해 주기 위해 그의 서랍은 피부질환연고, 가스 활명수, 술 깨는 약, 각종 소화제, 금연보조제, 해열제, 반창고, 붕대, 무좀약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의사와 기자는 취침문화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남녀 숙소가 구분돼 있는 종합병원(서울대병원)과 달리 기자실에 딸린 휴게실은 남녀구분이 없다는 것. 그는 일선 경찰서에서 하루 3시간만 자면서 2개월간 사회부 사건기자로 지옥훈련을 받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기자실에서 자고 일어나 보면 여기자가 옆에 버젓이 누워있어 소스라치게 놀란 경우가 많다. 뭔지 모르지만 내가 크게 잘못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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