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령의 하나로 <검찰보고사무규칙>이란 것이 있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규칙은 작년 7월 28일에 개정한 ‘새것’이다. 촛불 집회 주최자 4명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는 어느 조항에 해당하는가. 우선 보고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 규칙 제3조 제10호의 ‘정부 시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에 해당한다. 그것이 어떤 사건이냐에 대해선 규칙 제3조 제3항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의 위반 사건은 무조건 포함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3조 제11호의 ‘특히 사회의 이목을 끌만한 중대한 사건’에도 해당한다. 역시 같은 조 제4항에서 말하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크게 보도되어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킬 만한 사건’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보고 대상에 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각급 검찰청의 장이 상급 검찰청의 장과 법무부장관에게 동시에 보고해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땐 법무부장관에게 먼저 보고한 뒤 상급 검찰청에 보고해도 된다. 즉, 법무부장관에게는 무조건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사건과 관련한 영장청구와 같은 보고는 처분보고에 해당하므로, 처분 시마다 즉시 보고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검찰보고사무규칙>에 명확히 못박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검찰청의 검사장은 장관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꾸로 검찰총장에게만 보고했다. 사실은, 검찰총장에게 보고한 것이 아니라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랐다. 조사하면 밝혀지겠지만, 공안부 일부 검사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의 명령으로 무리하게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법무부장관에게 사전 보고를 하지 말라는 지시도 포함됐을 것이다. 그리고 영장은 기각됐다.
검찰총장의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법령 위반이다. 게다가 “조사하려면 나를 조사하라”는 것은 소신과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라 무모한 반발이자 공무원의 항명이다. 솔직한 송 총장의 심정을 대신 까발리면, 검찰총장과 그에 동조하는 검사들은 강금실을 법무부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정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다는 의사 표시에 다름아니다. 마치 그동안 야당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버텨온 것과 같다.
검찰총장이 이런 엉뚱한 승부수를 들고 나온 덴 배경이 있다. 지난 검사 인사 때를 보면 안다. 검찰총장은 강 장관이 총선에 동원되기를 기대했다. 자체 정보 판단에 따라 그렇게 믿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개혁적 파격 인사를 결사적으로 두 번이나 막았다. 그것도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이유를 댔다. 총선을 앞두고 대선자금 수사중에 검사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었다는 이유로 검사 인사가 유보된 적은 없다. 대선자금 수사가 정기 인사를 정지할 정도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검사들이 더 잘 안다. 결국 청와대는 그 거짓말에 속아 일시적이나마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며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 장관이 총선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표는 수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총선 직후 예상할 수 있는 전면 개각 때 강 장관이 경질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항명은 그 전략의 하나일 수 있다.
강금실의 법무부장관 기용으로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검찰 개혁이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도록 개혁의 발걸음은 더뎌 보이기만 할 뿐이다. 대선자금 수사로 검찰이 벼락처럼 국민적 인기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개혁과 거리가 멀다. 송두율 사건에서 확인한 구태의연한 공안 감각, 피의자 수사 때 변호인 참여를 끝내 거부하는 인권 의식 수준, 사회보호법 폐지안에 대한 수구적 태도, 배심제와 로스쿨 도입 같은 사법개혁안에 대한 철저한 반대 등 몇 가지만 살펴봐도 그렇다. 그나마 대선자금 수사를 그 정도 할 수 있었던 것도 검찰 자신의 의지 때문이 아니다. 노 대통령과 강 장관이 그렇게 배려했기에 가능했을 뿐이다.
검찰이 개혁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못하는 데엔 강 장관의 책임도 없을 수 없으나, 현재까지는 강 장관의 책임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검찰총장 이하 기존 검찰과의 긴장 관계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강 장관의 체제는 검찰 개혁의 계기를 마련했을 뿐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제 진정한 검찰 개혁은 강 장관이 얼마나 더 유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 년 사이에 강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계속 기회가 주어진다면, 중장기적으로는 분명 달라진 검찰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그때 가서도 검찰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강 장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총선 이후 강 장관이 유임하느냐 경질되느냐, 거기에 검찰의 운명 일부가 달려 있다. 우리는 검찰이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검찰총장도 그런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나름대로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총선 후에도 강 장관이 계속 유임하면, 송 총장은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첫 번째로 택할 수 있는 것은, 솔선수범하여 장관과 함께 개혁에 앞장서는 일이다. 그것이 싫다면, 더 불명예스런 오명을 뒤집어쓰기 전에 용퇴해야 할 것이다. 사실 “나를 조사하라”는 식의 항명이야말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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