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처리위원회는 행정기관의 잘못된 처분이나 정책 등에 의해 침해된 국민의 권리와 불편 불만사항을 구제하고 처리해주는 정부 기관. 후배 법조인들은 “군민(郡民)의 고충을 들어주던 판사가 국민의 고충을 들어주게 됐다”고 말한다.
조 위원장은 군 법원 판사를 하면서 ‘판결’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당사자들의 불만과 고충을 충분히 듣고 설득을 시켜 조정과 화해로 대부분의 사건을 끝냈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은 법조인으로서 2번 은퇴를 했다. 2000년 3월 30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접고 고향의 군 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당시 그는 “내가 스스로 정한 변호사의 정년이 됐다”며 고향으로 떠났다. 올 1월의 판사 퇴임은 ‘법조 무대에서의 퇴장’이었다. 그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시골집에서 노모(85)를 모시며 새해 농사 준비를 해왔다.
조 위원장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가 되었을 때 일터에서 퇴장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법조인에서 영원히 은퇴를 했었다”고 말했다. 고충처리위원회 일을 맡게 된 것에 대해 그는 “내가 빚지고 살아온 사회에 대해 마지막으로 봉사할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변호사 시절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 경실련 부정부패추방위원장 등 시민운동에 앞장섰으며 1988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공소유지 담당 변호사(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진행하는 재판에서 검사 대신 공소유지를 하는 변호사)로 ‘특별검사 1호’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군 법원 판사로 4년간 재직하면서 법원 일이 끝나면 군민들에게서 농사 이야기를 듣고 직접 밭에 나가보기도 했다. “농촌의 현실을 알고 그 현실에 맞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면 지역유지 모임이나 마을 사람들이 베푸는 술자리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한변호사협회 박찬운(朴燦運) 이사는 “법조인으로서 아름다운 퇴장을 했던 조 변호사가 사회에 대한 마지막 봉사를 선택한 것은 모두를 위해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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