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전문 판사’ 조영황변호사, 신문고 首長됐다

  • 입력 2004년 4월 2일 18시 42분


1월 전남 고흥군과 보성군의 군(郡) 법원 판사에서 정년퇴임한 조영황(趙永晃·63) 변호사가 2일 국민고충처리위원장(장관급)에 위촉됐다.

고충처리위원회는 행정기관의 잘못된 처분이나 정책 등에 의해 침해된 국민의 권리와 불편 불만사항을 구제하고 처리해주는 정부 기관. 후배 법조인들은 “군민(郡民)의 고충을 들어주던 판사가 국민의 고충을 들어주게 됐다”고 말한다.

조 위원장은 군 법원 판사를 하면서 ‘판결’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당사자들의 불만과 고충을 충분히 듣고 설득을 시켜 조정과 화해로 대부분의 사건을 끝냈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은 법조인으로서 2번 은퇴를 했다. 2000년 3월 30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접고 고향의 군 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당시 그는 “내가 스스로 정한 변호사의 정년이 됐다”며 고향으로 떠났다. 올 1월의 판사 퇴임은 ‘법조 무대에서의 퇴장’이었다. 그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시골집에서 노모(85)를 모시며 새해 농사 준비를 해왔다.

조 위원장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가 되었을 때 일터에서 퇴장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법조인에서 영원히 은퇴를 했었다”고 말했다. 고충처리위원회 일을 맡게 된 것에 대해 그는 “내가 빚지고 살아온 사회에 대해 마지막으로 봉사할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변호사 시절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 경실련 부정부패추방위원장 등 시민운동에 앞장섰으며 1988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공소유지 담당 변호사(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진행하는 재판에서 검사 대신 공소유지를 하는 변호사)로 ‘특별검사 1호’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군 법원 판사로 4년간 재직하면서 법원 일이 끝나면 군민들에게서 농사 이야기를 듣고 직접 밭에 나가보기도 했다. “농촌의 현실을 알고 그 현실에 맞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면 지역유지 모임이나 마을 사람들이 베푸는 술자리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한변호사협회 박찬운(朴燦運) 이사는 “법조인으로서 아름다운 퇴장을 했던 조 변호사가 사회에 대한 마지막 봉사를 선택한 것은 모두를 위해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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